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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한국인, 오바마에 쿨한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8호 35면

우리는 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열광하지 않을까.

세계는 오랜만에 ‘쿨(cool·멋진)’한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갔다고 반기고 있다. 오바마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은 이와 대조적으로 ‘쿨(cool·냉정)’하다.

우선 미국 분위기를 보자. 이번 주 필자와의 ‘글로벌 인터뷰’에서 전화로 대화한 톰 오닐 내셔널 지오그래픽 수석기자는 인터뷰 시간을 잡을 때 “취임식 하는 시간은 피하자”고 했다. 인터뷰 도중 오바마 행정부의 탈북자 문제 대응에 대해 묻자 일단 대답을 미루고 “오바마가 당선돼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했다. 오바마 얘기만 나와도 화색이 도는 얼굴 모습이 전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취임식 날 워싱턴 몰에 100만 명이 운집했다. 이젠 공화당원도 60%가량이 오바마를 지지한다.

오바마 광풍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광화문에 모인 붉은 악마와 같은 열기가 세계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오바마의 연설을 듣기 위해 베를린 승전탑 주변에 20만 명이 운집했을 때 이미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취임식이 있던 시간에 전 세계 인터넷 사용량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구글이 발표했다. 미 대선 기간 내내 많은 세계인이 오바마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설마 당선까지는 안 될 거야”라며 기대는 안 했지만 당선이 현실이 되자 그들은 꿈같은 나날을 보내며 취임식을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는 왜 오바마를 ‘쿨’하게 대할까.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해 봤다. ‘걱정도 팔자’라지만 우려할 만한 것도 나타났다.

-언어 장벽 때문이다. 오바마가 왜 언어의 천재인지 느낄 만큼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우리말로 번역해 놓은 오바마 연설은 밋밋하다.

-국제 문제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다. 한국인의 내면 깊숙이엔 아직도 폐쇄성, 혹은 내향성이 자리 잡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만큼 국제 뉴스 비중이 빈약한 나라도 없다. 모든 게 국내 뉴스 중심이다. 언론은 국내 뉴스를 바라는 독자와 시청자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 많은 나라에선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의 대결, 오바마와 존 매케인의 대결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봤다. 마치 우리가 ‘대장금’이나 ‘주몽’에 열광했을 때처럼. 우리는 띄엄띄엄 보도했다.

-‘반미주의’가 한 원인인지 모른다. 우리의 인식 바탕엔 미국은 ‘나쁜 나라’며 미국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놈이 그놈”이라는 사고가 깔려 있다.

-반대로 ‘친미주의’가 원인인지 모른다. 지난 8년 동안 세계는 조지 W 부시의 미국을 미워했다. 세계인의 ‘오바마 사랑’은 부시에 대한 증오의 산물이기도 했다. 부시에 대한 우리의 반감은 그리 깊지 않았다. 누가 되건 상관없으면 승리의 희열도 없다.

-한·미 경제관계 전망이 한 원인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난관에 봉착하고 미국에 보호무역주의가 등장할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오바마를 마냥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북한과 무조건 대화한다는 오바마의 등장이 가져올 북·미관계와 한·미관계의 거대한 불확실성을 두려워한다.

-기시감(데자뷔·d<00E9>j<00E0>-vu) 때문이다. 한국인은 지난 몇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엄청난 기대와 이어지는 실망을 경험했다. 우리는 정치 세계에 메시아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계의 나머지와 달리 우리는 오바마에 대한 기대가 없기에 실망도 없을 것이다.

분석에서 상상으로 자리를 옮겨 보자. 오바마 열풍에 우리가 뒤늦게 감염되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된 경우가 아닐까. 우리의 뒤늦은 오바마 사랑은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동반하지 않을까. 기우(杞憂)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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