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건설사 예금 동결 “기업 죽이는 구조조정”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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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 대상으로 선정된 일부 건설사들의 예금을 동결했다. 기업이 예치해둔 돈의 인출을 금지하는가 하면, 어음이나 법인카드 사용을 제한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이 때문에 지난 20일 은행단 경영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건설사들의 상당수가 설을 앞두고 하청업체 공사 대금 결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 경영이 어려워진 건설사를 회생시키겠다고 시작한 구조조정이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22일 은행 창구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각 은행에 동결 조치를 풀라고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과 건설업계에 따르면 신한·하나를 비롯한 일부 은행이 건설사에 자금 지급을 중단했다. 예금 인출과 법인카드 사용을 묶은 경우도 있다. 또 일부 은행은 어음 교부를 거부해 건설사들이 공사 대금 결제에 애로를 겪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A건설 관계자는 “워크아웃 대상으로 발표된 20일부터 예고 없이 예금 인출과 법인카드 결제가 중단됐다”며 “살리자고 하는 워크아웃인지 죽이자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1개 워크아웃 대상 건설사 중 5곳이 이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나머지는 대부분 사실 확인을 거부했고, 일부는 자금 동결이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제한 조치는 채권은행 전체가 아니라 일부 은행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B건설 관계자는 “며칠 전까지 정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해 주던 은행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금 인출과 어음 교부를 미뤘다”고 말했다. C사 임원은 “적잖은 예금이 있는데도 어음 교부를 해주지 않아 다른 은행에 애원해 겨우 돈을 융통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D사 담당자도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되긴 했지만 아직 워크아웃 절차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지나친 조치”라고 말했다. 이들은 채권단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며 모두 회사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주재성 금감원 부원장보는 “구조조정의 목표는 워크아웃 예정 기업을 죽이는 게 아니라 개선작업을 통해 살리는 것”이라며 “일부 은행이 이 취지에 역행하는 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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