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돌발 변수 탓인가 … 안전대책 소홀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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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진압계획, 현장에선 대참사=경찰의 ‘농성장 진입 계획’을 보면 예상 돌발상황이 상세하게 제시돼 있다. 화염병·새총·염산병 등 농성자 공격에 대한 대비책이 적혀 있다. 인화물질과 극단적 돌출행동이 우려된다는 내용도 있다. 아울러 소방차며 매트리스 같은 안전장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진압 과정에선 6명이 숨지는 대참사로 이어졌다.

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김원준 서울경찰청 경비1과장은 “계획엔 원래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망라한다”며 “하지만 시위대가 시너를 뿌리는 자살행위 같은 행동을 하리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성자 대책위원회 측은 “진입계획 문건은 요식행위일 뿐 처음부터 철거민에 대한 안전 고려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장주영(변호사) 대책위 진상조사단장은 “계획과 달리 현장엔 소방차 2대와 구급차 1대가 전부였다. 에어매트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반된 주장에 검찰은 “현장 지휘부 등을 상대로 진압 과정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왜 진압 서둘렀나=경찰과 농성자 간 대치는 통상 지구전 양상을 띤다. 2003년 상도동 세입자 투쟁은 2년을 끌었다. 하지만 용산 사건에선 농성 하루 만에 진압이 이뤄졌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승인은 신속했다. 조기 과잉진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김 청장은 “화염병·새총으로 민간인이 다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사실 지금껏 대부분의 철거 농성은 도심·인가와 떨어진 장소였다. 하지만 경찰청장 취임을 앞두고 김 청장이 본보기용으로 신속 진압을 결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2년2개월 만에 서울 도심에 등장한 화염병을 방치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성자들이 시너 뿌렸나=진압 특공대원들은 “망루에 진입하자 시너 냄새가 진동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경찰은 농성자들이 뿌린 시너 위에 화염병이 던져지면서 시너 통이 쌓인 3층까지 불이 번져 폭발을 일으켰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대책위 진상조사단은 “경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부상자 중 화염병을 던졌다는 이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경찰이 처음 망루 진입을 시도할 때 농성자들이 화염병과 함께 시너를 뿌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농성자 중 스스로 화염병을 던졌다는 사람은 없었고 ‘아무개가 던졌다’고 다른 이를 지목한 사람은 있었다”고 전했다.

◆전철연이 개입한 과정은=검찰 조사 결과 농성자의 상당수는 세입자가 아닌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회원이었다. 이들은 19일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와 합류하자마자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졌다. 검찰은 “농성 전철연 회원들이 용산 철거민 대책위와 함께 16일부터 망루 조립과 설치 연습에 들어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용산 대책위는 지난해 8~11월 망루 투쟁 방침을 정하고 6000만원을 모았다.

그러나 전철연과 사전 협의 후 투쟁자금을 모았는지, 역량이 달리자 전철연에 도움을 요청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전철연 측은 “용산4지구 투쟁에 외부 인사는 없다. 순수하게 지역 세입자들만의 투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충형·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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