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로스앤젤레스타임스 9일자 벤저민 슈워츠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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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소련이 해체된뒤 미국이 국방예산을 대폭 줄여 오랫동안 소홀히 다뤄졌던 국내문제에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대했다.그러나 빌 클린턴 정부가 최근 발표한'국방태세점검보고서'(QDR)는 이같은 기대와 거리가 멀다.국방정책 담당자들은 수개월동안의 작업끝에 미국 냉전전략의 핵심적 측면,즉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주도적 역할,동맹국들에 대한 중동 석유의 안정적 공급 보장은 여전히 침해돼선 안된다고 결론지었다.

보다 겸손한 외교.국방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재 미국의 국방전략이 신경과민으로 부풀려진 것이며 국방관계자들이 예산삭감을 막아 기득권을 보호하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종식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사람들은 미 외교정책의 진정한 목표를 잘못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미국 주도아래 국제질서를 구축하려 한 것은 단순한 지배욕의 발로가 아니라 세계경제권을 창조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지난 40년대 이래 미국의 외교정책은 세계자본주의와 국제정치 사이에 빚어지는 모순을 해소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정책입안자들은 비교우위와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교역과 자본이동이 이뤄지는 세계경제,다시말해 생산과 투자가 전세계적으로 통합되는 경제를 상정했다.

40년대 이래 미국은 국제정치를 뒤바꿔 놓았다.미국이 다른나라의 안보까지 책임짐으로써 그들 국가가 경제발전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결국 냉전종식 뒤에도 여전히 미.일안보동맹과 NATO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미국의 안보 리더십은 국제사회의 경제적 상호의존에 필수적인,'안정'을 위협하는 국가들간 경쟁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클린턴 정부의 동아시아 안보전략을 입안한 조지프 나이 전미 국방차관보는“미국의 군사적 보호는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번영의 근간이며 미국이 동아시아에서의'주도적 역할'을 포기할 경우 기업활동과 투자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정책의 밑바닥에는 복잡하게 얽힌 현대의 국제교역.생산.자본의 망이 너무도 취약해 미국이 세계적 리더십을 포기할 경우 쉽게 붕괴됨으로써 재앙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깔고 있다.

실제로 국방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냉전시대 미국의 동맹체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철수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고 말했다.이같은 논리는 결과를 알 수 없으므로 현재 미국의 정책이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냉전시대 정책이 영구적 부담으로 남게된 것이다.

'월드 폴리시 저널'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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