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레닌의 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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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레닌으로 하여금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트로츠키였다.하지만 레닌 말기에 이르러 트로츠키는 권력의 핵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고,대신 급부상한 인물이 스탈린이었다.8개월동안 식물인간 상태였던 레닌이 1924년 1월21일 네번째 뇌졸중을 일으켜 마침내 사망했을 때 시중에는 레닌이 스탈린에 의해 독살당했으리라는 설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었다.소문의 진원지는 트로츠키였다.

53년 3월5일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숨이 끊어지기 전부터 후계자인 흐루시초프가 독살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막상 숨을 거두자 독살설은 한동안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사흘전부터 옆방에서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있던 스탈린의 아들 바실리는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해듣고“아버지는 살해됐다.독살이다!”고 부르짖었다.

물론 그들의 독살설은 레닌의 부검을 맡았던 독일 신경병리학자 오토 빅토와 스탈린의 부검을 맡았던 9명의 러시아 최고 의학자들이 뇌질환이었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부정됐다.그래도 이들의 죽음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은 많았으나 레닌의 경우 독살설을 어느 정도 가라앉힐 수 있었던 것은 스탈린에 의한'각별한'배려였다.

레닌이 죽던 날은 러시아에서도 가장 추운 날이었지만 모스크바에는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비탄에 몸부림치던 사람들 가운데는 히스테리를 일으켜 쓰러지는 사람까지 있었다.스탈린은 여기에서'죽은 공명(孔明)이 산 중달(仲達)을 쫓는'아이디어를 창출해냈을까.미망인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레닌의 시신을 방부처리해 크렘린의 벽앞에 지은 영묘(靈墓)에 안치토록 한 것이다.레닌을'희망의 상징'으로 신격화해 자신의 통치에 도움을 주도록 하는 의도였다면 그것은 결국 독살설과는 무관했던 셈이다.

지금 러시아에서는 그 레닌의 시신을 매장하는 문제를 놓고 옐친정부와 반대파간에 입씨름이 한창이라고 한다.러시아사람들은'희망은 땅 속에 묻지 않는 법'이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는데 옐친의 뜻대로 이 문제가 국민투표에 부쳐진다면 레닌이 아직도 러시아의'희망'인지 어쩐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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