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가 못 받쳐줘 한국경제 더 곤란 “돈 더 풀고 재정지출도 대폭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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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KDI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 자체는 뉴스가 아니다. 문제는 그 수준이다. 0.7% 성장 전망은 국내 연구기관 중 가장 낮다. 올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처음 나온 것이다.

KDI는 세계 경제의 급락을 성장률을 낮춘 근거로 들었다. 올해 세계 경기는 정보기술(IT) 버블이 터졌던 2001년보다 더 심각한 불황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경제는 세계 경기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국내총생산(GDP)의 75%를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세계적 불황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수출 현장은 이미 비상이다. 당장 이달 1~20일 수출(관세청 기준)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나 감소했다.

KDI는 우리 경제가 상반기에 뒷걸음질치고, 하반기에 기력을 회복하며 ‘V’자형 회복을 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것은 ‘베스트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KDI는 세계 경제성장률을 1% 안팎으로 가정해 이같이 전망했다. 세계 경제가 이보다 나빠지거나 유가가 예상외로 많이 오르면 하반기 회복을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가 이토록 궁지에 몰리는 것은 내수가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KDI는 소비가 상반기에 1%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경기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다 쳐도 내수는 손 써 볼 여지가 있다. 정부는 그동안 다른 나라보다 훨씬 과감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주장했지만, KDI는 좀 더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쓰라고 주문했다. 금리를 더 내리고, 예산은 보다 신속하게 집행하라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엔 정부에 더 획기적인 비상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다. 예컨대 선진국들이 민간의 소비를 살리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현금이나 쿠폰 지급 같은 것들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소득층에 일정 규모의 현금이나 쿠폰을 나눠주면 내수 진작에 상당한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KDI가 강조한 대목은 구조조정이다. 금융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조조정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부실 기업을 잘라내는 구조조정을 견뎌내려면 은행이 튼튼해야 하고, 자본 확충이 시급하다.

이에 대해 KDI는 부실이 심각한 은행에 대해선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사전에 국회 동의를 얻어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적자금은 경제 파탄 책임론과 연결될 수 있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이슈다. ‘강만수 경제팀’이 공적자금 투입을 마지막 카드로 미뤄둔 채 자본확충펀드를 대안으로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윤증현 경제팀’이 우회하지 않고 공적자금 투입이란 정공법을 택할지 주목된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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