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무표정.아들은 고개 떨궈 - 한보 선고공판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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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보사건 선고공판이 열린 2일 오전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은 선고결과에 쏠린 관심을 반영하듯 공판시작 1시간전에 1백70여 방청객이 가득찼으며 내.외신 취재진들까지 대거 몰려들어 초만원을 이뤘다.

…손지열(孫智烈)재판장이“징역 15년”을 선고하는 순간 정태수(鄭泰守)피고인은 눈을 반쯤 뜬 채 무표정하게 앞을 응시.반면 아들인 정보근(鄭譜根)피고인은 고개를 숙였고 방청석 중간쯤에 앉아 있던 4남 한근(瀚根)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孫재판장은 11명 피고인에 대해 일일이 정상참작 사유를 설명하면서도 정태수 피고인에 대해서만은“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해 눈길.孫재판장은 그 배경에 대해“피고인이 고령이고 건강상태가 대단히 나쁘며 그간 쌓아 온 기업이 도산해 남은 재산조차 없는 등 인간적으로 동정할 부분이 없지 않으나 범죄전력(前歷)과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생각할 때 형을 절대로 가볍게 할 수 없다”고 설명. …재판부가 양형(量刑)이유와 형량을 낭독하는 동안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재판부를 응시.수염이 길게 자란 초췌한 모습으로 교도관의 부축을 받으며 입정한 정태수 피고인은 선고 이후에도 방청석도 돌아보지 않은 채 퇴정. 반면 권노갑(權魯甲).홍인길(洪仁吉)피고인은 퇴정때 방청석을 향해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으며 김우석(金佑錫)피고인은 선고 직후 두 손으로 눈 주위를 비볐고 특히 신광식(申光湜)피고인은 줄곧 눈을 감은 채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한편 정보근 피고인은 입정 직후 정태수 피고인에게 다가가 안부인사를 전하고 아버지 무릎 위에 손을 올리며 애틋한 자식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이날 담당변호인들은 대부분 재판결과에 수긍할 수 없다며 항소할 뜻을 표명. 정태수씨 부자의 변호를 맡은 정태류(鄭泰柳)변호사는“우리 주장과 차이가 있다”며 불만을 표시.이석형(李錫炯)변호사등 권노갑 피고인의 변호인단은 성명서를 내고“정치적 음모에 따라 형식적으로 이뤄진 재판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주장. 한편 홍인길 피고인의 변호인인 소동기(蘇東基)변호사는“최고 5년까지 예상했는데 형량이 너무 높게 나왔다”면서도“洪씨가 감옥에서 자신의 재판에는 관심이 없고 대통령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언. …한보사건 관련 피고인들에게 대부분 실형이 선고되자 이 사건을 전담한 대검중수부는 모처럼 활짝 웃는 모습.심재륜(沈在淪)중수부장은 김상희(金相喜)수사기획관과 중수부 1.2.3과장으로부터 선고결과를 보고받은 뒤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수사관계자들을 격려. …국회청문회에서 정태수 피고인에게'머슴'으로 불렸던 김종국(金鍾國)피고인이 관련피고인중 유일하게 집행유예를 받자 방청석에서는“머슴은 나와도 주인은 못 나온다”는 농담이 나돌기도. 법정에서 전문경영인이라는 용어 대신 머슴으로 불려진데 대해 가끔씩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金피고인은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웃음을 띠며 안도하는 표정이었고 퇴정시에는 가족들과 회사동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김정욱.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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