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장시간노동 불구 3D업종서 큰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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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2일 오후2시 경기도성남시야탑동 소재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있는 전자자수업체 화양자수의 작업장. 재봉틀처럼 생긴 자수기가 죽 연결된 작업장에 필리핀 근로자 4명이 한국인 9명과 섞여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다.

이 공장에 온지 2년째인 필리핀인 파스코아 줄리우스(26)가 지난 8일 새로 온 안토니오 가파스(23)에게 실이 끊어져 가동이 멈췄을 때의 작동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줄리우스는“근무시간이 12시간씩 2교대라 힘들지만 시간외 수당등 월급이 많아 만족한다”며“내년 4월 계약기간이 끝나 귀국하더라도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루 2교대로 24시간 가동되는 이 공장의 직원수는 한국인 14명에 필리핀인 7명. 국내 근로자임금은 월평균 1백30만원에 연간 보너스 2백%지만 필리핀 근로자들의 월 임금(연수수당)은 숙련도에 따라 60만~85만원선이다.

이 회사 양태순(楊泰順.39)사장은“국내 근로자들은 소음과 야근을 기피해 월급을 1백만원 이상 준다 해도 구하기 힘들다”며“외국인 근로자들은 작업태도도 좋고 인건비도 싸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따르면 97년 4월말 현재 국내에서 취업중인 산업연수생은 모두 7만5천여명.올해말까지 4천명이 추가로 들어올 예정이다.

노동부가 지난해 9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산업연수생을 쓰는 중소기업의 71%가 국내인력 구인난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산업연수생들의 근로시간은 월 2백90시간으로 내국인보다 월 21시간이 많다.그러나 임금총액은 월평균 71만6천원으로 내국인 근로자의 79% 수준으로 조사됐다. 충북진천의 스테인리스 싱크대 제조업체 선명산업 김성부(金性夫)회장은“사람을 구하지 못해 조업률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며“인건비가 싼 연수생들은 중소기업에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그러나 일부 기업의 연수생들은 불법 취업알선 브로커에 걸려 규정된 송출비용 외의 많은 뒷돈을 주고 온 탓으로 더 높은 임금을 찾아 사업장을 이탈하는 경우가 있다.이 때문에 기업들은 이탈을 막기 위해 임금을 조금 올려주거나 추가수당을 지급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또 저임금하의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체불.산업재해.폭행등 인권침해 사례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전국의 노동관서에 외국인 연수생 민원접수가 95년부터 96년 3분기까지 3백26건 접수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불법취업자의 경우는 인권침해를 당했어도 출국조치를 우려해 신고를 기피하고 있어 인권유린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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