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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언더 인디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인 어어부(본명 백현진·25)는 요즘 무대에서 환자용 휠체어에 앉을 때가 많다.뽕짝리듬에 실어 ‘아름다운 세상의 어느 가족 줄거리’를 부른다.“남자의 척추뼈가 분리됐네/그날부터 산소대신 한숨을 마시며 사네(…)남자의 아들놈이 차사고 났네/한숨대신 소주를 마시며 사네(…)남자의 마누라가 집을 나갔네/소주대신 침묵을 마시며 사네(…)남자의 집구석이 잿더미됐네/휘청거리다 염산을 들이마셨네”

어느 대목에선 시장통용인 메가폰에 목소리를 담아낸다.곡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혼자 짐을 싸들고 관중곁을 지나 퇴장하기도 한다.‘웩’하는 가사에서는 실제 뭔가를 뱉기도 하고 무당의 요령을 흔들고 장난감 종을 치다가 바이올린 활로 금속을 긁어 음을 내는등 키치와 전위를 오간다.그는 하나의 유형으로 분류되는 것을 혐오한다.

어어부는 대중음악이 피할수 없는 삶의 사운드 트랙이 된 후 태어난 전파매체 세대다.그는 말한다.“‘강병철과 삼태기’의 키치적 전위성에서 혜은이의 가공된 서정성까지 포괄한 넓은 밭이 우리 음악의 토양이다.” 그의 작업은 록적인 의식의 다양한 차원을 가로지르며 요약하고 있다.

이들 록밴드가 지금만큼 근사해 보이는 때가 없었다.열광적인 관중 앞에서 집단 신들림을 연출하는 로커,이를테면 작은 신(神)이다.

얼마전 끝난 TV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주인공도 록뮤지션이었다.안재욱을 스타로 만든 그 배역은 원작의 혐의를 받는 일본만화 ‘캔디’에서는 귀공자였다.문화적 저항마저도 상품으로 뒤집어버리는 가공할 문화산업에 의해 저항음악인 록은 무장해제를 당했다고 했던가.그래서 록은 스타시스템의 한복판에서 귀공자의 자리에 등극하고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는 없는 법.지배 이데올로기에 기만당하는 수동적인 문화중독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치전복의 록세계가 있다. 마음이 나쁜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다는 임금님의 비단옷같은.

이름하여 언더그라운드 인디(독립)록이다.이는 메이저 문화산업에 실려가지 않는 비주류 정신을 고수하고 있지만 소량의 수공업적인 것일지라도 앨범을 낸다는데서 일체의 대량전달을 거절하는 언더그라운드와 다르다. <관계기사 35면>

주요 무대는 소비 문화의 기수라는 세속적 비판을 받고 있는 서울의 신촌·홍대앞·대학로등의 라이브 카페들.구체적으로 말하면‘언더그라운드’‘드럭’‘빵’‘살’….집기를 다 치우고 청중 모두가 일어선다해도 50명 수용하기가 벅찰만큼 좁은 공간들이다.

골방에서 개인이 듣는 음악이 아닌 현장에서 여럿이 함께 두드리고 어울려 듣고 보는 민주공동체적 라이브 공연이 여기서 열린다.청중과 밴드 사이의 최단거리는 50㎝. 연주자도 곧 관객이다.“놀자,놀래. 그래 놀아.” 쾌락은 반(反)예술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음악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연주능력이야 천차만별이지만 흥을 생산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다.특히 공연중의 해프닝성(性) 퍼포먼스와 다양한 개성은 박제화된 상업음악에서 보기 힘들다.

그룹 ‘내 귀에 도청장치’의 보컬 이용구는 완전히 풀린 눈을 퀭하게 뜨고 마이크 지지대에 의지한채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노래한다.그에게 마약이나 알콜의 혐의를 둔 관객들은 공연후 “연기까지도 음악이다”고 외치는 그에게 한방 먹는다.실제로는 멤버들이 술도 하지않는단다.음악에 취한건가.

그룹 ‘메이 데이’는 ‘이스크라’와 함께 혁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지만 80년대식 민족·민중적 노래패들과는 가는 길이 다르다.청바지에 긴 머리채를 마구 흔들며 ‘전선은 있다’를 외치는 남자 보컬의 모습.반란까지도 규범화된데 대한 반란인가,의식과 음악이 저항 에너지의 장(場)속에서 다양한 양식적 결합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건가.

시청률을 숭배하는 방송국은 상업화된 댄스음악을 하기에는 충분히 넓어도 이들에게는 좁다.스타 찾기에 바쁜 기획사·음반사는 일부 뜻있는 벤처투자를 제외하고는 적자가 기정사실인 이들의 앨범을 출시할 만큼 순박하지 않다.그래서 대부분은 기획부터 녹음·재킷 디자인까지 스스로 맡아 ‘인디 레이블’이라 불리는 음반을 낸다.그나마 96년6월 공륜의 음반 사전심의가 없어진 덕이다.

CD 7천원,테이프 4천원,데모 테이프 2천원.홍대앞 펑크록 카페의 성지 ‘드럭’에 붙어 있는 가격표다.거기서 활동하는 이른바 드럭밴드들의 음반이 팔리는 거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대표적인 인디앨범인 이 음반의 제작비는 불과 2백만원.드럭밴드들의 이름-뇌가 없어 불쌍하고 생명도 미래도 불확실한 무뇌아를 일컫는 ‘노 브레인’,울부짖는 ‘크라잉 너트’와 ‘위퍼’,그리고 자유롭게 높이 날아 멀리보는 ‘갈매기’가 ….

저항문화와 상업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가 모두 함몰돼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즐겁게 연주하고 있는 이들 인디 록그룹들.그들은 자유롭게 두들기고 흥겹게 악을 쓰며 부자유스런 세상을 전방위적으로 ‘농단’하고 있다.

글=채인택 기자·사진=김명미(언더그라운드 사진작가)

“무뇌아를 목표로 무의미한 사고의 나열에 주력했다.의도된 결과를 부여하기보다 소비자에게 재해석을 맡긴다.” (전 드럭밴드 옐로 키친)

“극도의 절망과 방황,모든 이들의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음악으로써 함께 하고자 한다.” (어라)

“이들은 소수 매니어 팬만 갖고 있을 뿐으로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검증이 더 필요하다.” (음반기획자 김진석)

“악마가 되기 위해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적극)

“우리의 모토는 음악에 취하자는 거다.” (내 귀에 도청장치)

“아무거나 즐거운 것이면 다 하고 싶다.” (하손비)

“듣고 보는 이들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기 위해 결성했다.” (안티 소시얼)

“록의 저항정신?언더그라운드?인기 얻어 잘 팔리면 돈벌고 좋지. 그걸 나서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 단 내 방식이 훼손되지 않았을 때에 한한다. 어지러운 나라에서 작업하기란 덩달아 어지럽지만 즐겁다.”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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