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101. 일본 게이오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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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게이오대 안자이 총장(右)은 방문교수로 간 필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2005년 가석방되고, 모든 직책에서 떠나 홀가분하게 빈손으로 집에 왔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망가진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스모·당수·태권도 등 각종 운동을 했고, 대표선수로 출전할 만큼 실력도 뛰어났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IOC 위원, GAISF 회장, WTF 총재, 대한체육회장, 대한태권도협회장, 그리고 각종 위원장 등을 겸직하면서 세계를 안방처럼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도 기본 체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직책을 놓고 수감 생활을 하면서 육체와 정신이 모두 피폐해졌다. 안과·심장내과·정형외과·비뇨기과·치과 등을 순회했다. 70년 넘게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았는데 한꺼번에 몰아서 한 것이다.

대부분은 이럴 때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미국행을 선택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 형태로 미국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일본을 선택했다. 그 중에서도 나의 모교 연세대와 자매결연 대학인 게이오(慶應)대의 방문교수로 갔다. 게이오대 측은 좋은 아파트와 연구실 등 모든 편의를 제공해줬다. 참으로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안자이 유이치로 총장을 만났더니 “IOC 부위원장까지 지낸 분이 우리 학교에 오다니 영광이다”라며 반갑게 맞아줬다. 많은 얘기를 나누고 총장실을 나서는데 안자이 총장이 계단까지 따라 내려오더니 “나도 검도선수 출신”이라며 검도복을 입고 있는 자기 사진을 보여줬다.

게이오대 방문교수는 ‘일본이 어떻게 근대화를 이룩했는지, 어떻게 패전국에서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는지, 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이오대는 여러모로 연세대와 비슷하다. 게이오는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150년의 역사를 가진 명문 사학이다. 일본 1만 엔짜리 지폐 사진의 주인공인 후쿠가와 유키치가 설립했다. 범선을 타고 미국을 다녀온 후쿠가와는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등 교육사업에 뛰어들어 ‘일본근대화의 초석’으로 불린다. 학교뿐 아니다. 산케이(産經) 신문의 전신인 시사신보(時事申報)와 미쓰이(三井)은행도 세웠다. 일본 사학의 맞수 와세다(早稻田)대를 설립한 오쿠마 시게노부와는 친구 사이로 와세다-게이오 스포츠 대결인 소게이셍(早慶戰)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일본 500대 기업의 장(長)을 분석한 통계를 보면 게이오 출신이 80여 명으로 가장 많다. 그 중에는 도요타자동차, 시세이도, 세이코 시계 사장도 포함돼 있다. 도쿄대 출신이 70여 명, 와세다대 출신이 40여 명으로 돼 있다.

게이오는 지난해 창립 150주년 사업을 위해 250억 엔(약 3700억원)을 목표로 동문 대상으로 모금을 했는데 목표를 초과한 300억 엔이 걷혔다고 한다. 그만큼 사회 일꾼도 많고, 단결심도 강하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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