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정치 삼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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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해파리와 오향장육·새우 등을 섞어 만드는 중국 요리의 하나가 삼품(三品)냉채다. 한국인의 구미에 맞아 이름을 널리 알려 ‘삼품’을 거론하면 바로 이 요리를 떠올린다.

정치에도 삼품이 있다. 요리에 사용되는 삼품이라는 것은 세 가지의 재료를 일컫는 말. 그러나 정치에서 가리키는 삼품은 종류를 구분한 게 아닌, 등급의 개념이다. 상품과 중품, 하품의 정치다.

한(漢)대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정치에 삼품이 있으니 어진 정치는 상대를 변하게 하고, 패자의 정치는 남을 위압하며, 강한 정치는 상대를 위협한다(政有三品, 王者之政化之, 覇者之政威之, 强者之政脅之).”

유교적 관념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왕자(王者)다. 물리적인 힘에 의하지 않고 대상을 자신의 덕(德)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그 다음이 패자다. 위엄과 기세로 남을 이끄는 정치다. 강자(强者)는 가장 하수다. ‘강한 정치’라고는 하지만 억지를 지닌 통치의 술이다. 유향은 이렇게 정치를 세 등급으로 나눴다. 왕자의 정치는 그 통치 방식에 앞서 옳고 그른 것을 제대로 가리는 문화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패자의 통치는 요즘 말로 이야기한다면 법규와 제도에 의한 치세 방식이다. 형벌로서만 잘못을 묻는 위협적인 통치술이 강자의 정치다.

시비를 차분히 가려 옳은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문화가 없으니 요즘 한국에서 유교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법규와 제도가 튼튼해 룰에 승복하는 문화 또한 없으니 패자의 정치도 마땅찮다. 잘못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일벌백계식의 강압을 가하는 강자의 정치가 한국 수준에 더 맞는다.

해머와 망치를 들거나 시정잡배 수준의 폭력을 선보인 국회의원을 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폭력방지법이라도 만들어 대의(代議)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저질의 국회의원들을 솎아내야 한다는 점에는 달리 토를 달고 싶지 않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참담하더라도 이상의 고귀함을 버려서는 안 된다.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더 넓혀 상대를 설득하는 노력은 대통령의 몫이다. 최근의 라디오 연설에서 야당만을 질타한 대통령의 자세는 그래서 문제다. 남 탓에 앞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헤아릴 줄 알아야 참 지도자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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