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실용] 'How Customers Thin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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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Customers Think
제럴드 잘트먼 지음, 노규형 옮김
21세기북스, 472쪽, 2만8000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은 언제 들어도 딱이다. 남의 마음은 고사하고 자기 마음도 모를 때가 사실 얼마나 많은가.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제럴드 잘트먼 교수가 쓴 『How Customers Think』는 소비자의 마음을 공략해 이윤을 얻어야 하는 경영자들에게 ‘독심술’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 앤 리서치의 노규형 대표가 번역한 이 책은 기존 마케팅 방법의 오류를 밝히는 데서 출발한다.

우선 소비자들이 각 제품 모델의 옵션을 비교하고 만족도 대비 비용을 계산하는 등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구매를 결정할 것이란 가정부터 틀렸다는 것. 저자는 “소비자의 구매결정 요인 중 95%는 무의식”이라며 “소비자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고 해석했다. 똑같은 제품이 10달러일 때보다 9.99달러일 때 훨씬 많이 팔리는 현상을 단순히 1센트를 절약하기 위해서라는 ‘의식적인 결정’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금연 포스터의 담배 그림을 보고 흡연 욕구를 느끼는 식으로 엉뚱한 반응을 하는가 하면,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무시하기도 한다. 한 연구조사에서 참가자들에게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출연자들이 농구공을 몇번 패스하는지 세어보라고 하자 장면 중간에 등장하는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아무 주문 없이 같은 비디오를 보여준 다른 그룹에서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고릴라가 등장하는 화면을 꼽았다. 이런 ‘삭제’효과 때문에 재미있는 로고송, 매력적인 모델을 앞세운 광고가 때때로 제품 전달력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복잡미묘한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 기존 설문조사 방법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설문 문항은 기업이 ‘듣고 싶은 대답’만을 나열하고, 소비자들은 ‘이게 아닌데’하면서도 그나마 나은 차선책을 골라 답을 준다. 설문 결과는 대개 경영자가 미리 예상하는 소비자의 생각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문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제품이 소비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조사법은 한마디로 ‘은유추출기법’이다. 조사 대상자에게 “관련된 이미지를 가져오라”고 주문한 후 일대일 인터뷰를 통해 소비자의 무의식을 파헤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 이미지 광고를 준비하는 한 기업이 조사 대상자들에게 “바람직한 기업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사진을 갖고 오라”고 주문했다. 어떤 사람은 해변에서 아들을 안고 있는 엄마 사진을, 또 다른 사람은 함께 당구를 치는 연인의 사진을 갖고 왔다. 이어 조사자는 각 사진을 골라온 이유와 의미 등을 묻는 일대일 심층면접을 통해 소비자들이 기업으로부터 ‘보호’ 받기를 원하는 등의 공통점을 뽑아냈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했다.

이러한 은유를 추출하기 위한 인터뷰는 객관식 답을 얻는 과정이 아니므로 기존 설문조사와 같은 대규모 조사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저자는 “12∼15명의 소비자들과 두 시간 인터뷰를 진행할 경우 모(母)집단을 대표하는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거대 기업의 이미지나 제품을 마케팅하기 위해 10여명과의 인터뷰가 충분하다고?’라는 의문이 슬슬 생길 무렵, 저자는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라”고 또다시 재촉한다. “새로운 시도만큼 우리를 두렵게 하고 흥분시키는 것도 없다”면서.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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