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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트먼 감독 블랙코미디 '야전병원 매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제도권 상업주의 영화계에 얽매이지 않은 미국 독립영화계의 대부 로버트 올트먼 감독은 원래 2차대전 당시 폭격기 조종사였다.그는 이때 배운 철칙을 영화 연출에 그대로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분명한 길을 갈 것,실행하기 전에 조준을 명확히 할 것,강하고 정확히 때릴 것'. 주저함이나 모호함 없이 신랄하게 풍자한다는 이같은 원칙아래 만들어진 올트먼의 블랙 코미디는 씹을수록 맛이 나는 통렬함과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긴장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표적 미국문화인 컨트리 음악의 세계를 해부하면서 미국 사회의 허와 실을 파헤친'내슈빌'(75년),CF만화시리즈를 실제로 옮겨 놓아 거침없이 패러디화한'뽀빠이'(80년)등에서 올트먼의 뼛속 깊이 배어 있는 반골 성향이 거침없이 발휘됐다.

환갑이 넘어서도 제도권 상업영화에 반기를 든 올트먼은 할리우드 영화계의 부도덕성과 비열함을 드러내준'플레이어'(92년),이념적.정치적 공허함을 암시하는 중산층 일상생활의 파노라마'숏 컷'(93년)등에선 기승전결의 전통적 이야기 전개방식을 해체해버리며 현대 예술과 미디어의 세계를 조롱했다.

내용과 형식에서 동시에 반주류를 추구하는 올트먼식의 이러한 작품세계는 그의 세계적 출세작'야전병원 매쉬'(MASH.폭스.70년)에서 구체화됐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비디오로 나온 이 작품은 50년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한 이동외과병원(Mobile Army Surgery Hospital)에서 3명의 군의관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독설과 해프닝들을 정신없이 보여준다.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던 피투성이의 수술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상명하복등의 군대 원칙을 비참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해버리는 에피소드들은 올트먼 특유의 하이퍼리얼리즘으로 평가됐다.

특히 배우들의 즉흥연기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는 지독한 독설과 다큐멘터리 같은 연출은 영화광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내 미개봉작인 이 작품의 히트에 힘입어 같은 제목의 TV시리즈가 제작됐으며 한국에서도 미군 방송에서 오랫동안 시리즈로 방송된 바 있다.전투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 이 작품엔 야전병원에서 심부름하는 한국인 꼬마도 출연하고 한국 시장거리가 잠깐 나오긴 하지만 베트남식 밀짚모자가 등장하는 등 한국적 환경과는 무관한 작품이다.

미국식 합리주의와 보수성을 파괴해버리는 올트먼의 작품들은 유럽쪽에서 특히 각광받아'야전병원 매쉬'는 7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이 작품의 묘미는 무엇보다 도널드 서덜랜드.로버트 듀벌등이 내뱉는 냉소적인 대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한글 번역 자막은 이러한 대사의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발견된다. 채규진 기자

<사진설명>

독립영화와 블랙 코미디의 거장 로버트 올트먼의 세계적 출세작'야전병원 매쉬'에선 전쟁과 비인간화를 꼬집는 통렬한 풍자와 독설이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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