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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적으로 허위사실 퍼뜨려 외환시장 타격’ 인정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다음 아고라에 미네르바라는 이름으로 글을 썼습니까?”
“예!”
10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318호 법정. 미네르바로 지목된 박대성씨에 대한 영장심사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법원 주변의 분위기는 달랐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과 문병호 전 의원, ‘자원 등판’한 박찬종 전 의원, 민변 소속 변호사로 구성된 박씨의 매머드급 변호인단은 공판시작 1시간 전부터 법원 주변에 진을 쳤다.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심사한 김용상 영장전담 판사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반면 최열 환경재단 총재나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법조 주변에서는 그래서 김 판사를 “강단 있고 원칙에 충실한 편”으로 해석하고 있다. 박씨 변호인들은 실질심사 전 “석방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검찰도 승리를 자신했다. 김주선 마약조직범죄수사 부장검사는 기자와 만나 “내가 남부지검에 근무할 때는 현역의원이던 김경재씨를 명예훼손으로 구속했고 광주지검 근무 때인 2005년엔 기아차 입사 뇌물비리 사건을 수사했다. 돈키호테식으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씨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12월 29일 긴급보도 형식의 글은 인터넷 호외나 마찬가지”라며 “미네르바의 글을 10만 건 클릭한다는 건 호외 10만 부를 찍어 광화문 네거리에 뿌린 것과 다름없다”고 규정했다.

휴일인 토요일 오전에 시작된 영장심사는 1시간30분 동안 계속됐다. 이후 6시간 동안 재판부는 장고를 거듭했다. 양측 모두 초조함을 나타냈다.

법원은 결국 마지막에 검찰 손을 들어줬다. 심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두 가지였다. ▶박씨가 인터넷에 허위 글을 올린 것에 고의성이 있는지와 ▶박씨의 글로 인한 피해를 특정할 수 있느냐였다.

영장 심사 6시간 만에 발부
박씨의 덜미를 잡은 문제의 글은 두 가지다. ‘대정부 긴급공문발송-1보’라는 제목으로 “정부가 주요 7대 금융기관과 수출입 관련 주요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했다”(지난해 12월 29일)는 것과 “외환·예산·환전 업무가 8월 1일자로 전면 중단된다”(같은 해 7월 30일) 는 글이었다.

검찰은 박씨가 이 같은 내용이 모두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고의로 인터넷에 퍼뜨려 정부의 외환정책에 막대한 타격을 줬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이를 전면 부인했다. 12월 29일의 글에 대해선 “기획재정부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 성명을 내자 그날 저녁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고 받아쳤다. 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금융기관에 협조 공문이 내려갔다는 글을 봤으며 이를 과장되게 작성했을 뿐, 공익을 해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검찰은 반박했다. “기획재정부가 사실무근이라고 한 뒤 다음 측은 오후 4시쯤 (미네르바에 대해) 접속을 차단했다. 그런데 박씨는 오후 5시에 ‘존경하는 강만수 장관님께’라는 제목으로 ‘거짓말하지 말고 내부 스파이나 잘 단속하라’는 식의 글을 2개나 더 올렸다. 잘못을 시인하고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박씨의 고의성을 인정하면서 검찰 손을 들어줬다. 변호인단은 ‘달러 매수 금지 명령’ 등을 포함한 글이 인터넷에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작성됐고, 정부도 비슷한 정책을 취한 정황이 있는 만큼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법원이 박대성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박씨의 글이 실질적으로 공익을 해쳤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박씨가 인터넷에 올린 “정부가 금융기관 등의 달러매수 금지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이 허위사실일 뿐 아니라 외환시장과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통상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때는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데,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사안의 중대성에 초점을 맞춰 그를 구속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박씨의 글로 인한 피해자와 피해 금액을 특정할 수 있느냐는 실질심사 전부터 커다란 논란거리였다. 변호인들은 영장실질심사에서 “10대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이 개인의 인터넷 글 때문에 경제 전반에 큰 혼란을 받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는 요지로 변론했다. 박씨가 인터넷상에서 글을 유포한 행위로 인해 구체적인 피해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박씨는 검찰이 문제 삼은 자신의 글에 대해 “외환위기 때 피해를 봤던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실제보다) 다소 강한 표현을 쓴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상업적으로 내 글을 이용하려 했다면 큰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나 그러지 않았다”며 애국적 차원의 글쓰기였음을 부각시킨 셈이다.

그러나 검찰은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자는 없을지 몰라도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란은 심대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네르바는 ‘경제 대통령’으로 대중에게 인식될 만큼 영향력이 큰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쓴 글의 파장에 합당한 책임은 지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었다.

검찰은 “미네르바의 글 때문에 외환시장에 혼란이 생겼다. 외환 당국이 ‘심리적 쏠림으로 인한 환율 급변동을 제어하는 미세조정(smoothing operation)’을 대내외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걸 방해했다. 기업도 말 한마디에 무너질 수 있는 마당에 당연히 필터링이 필요하다”고 반문했다.

검찰은 특히 전기통신기본법은 고의성과 허위사실만 입증하면 되지 피해자를 특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 미네르바의 글이 외환시장 등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었지만 법원은 박씨가 작성한 글로 인해 시장에 ‘폐해’가 발생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앞서 법원은 지난해 촛불시위 중 ‘여대생 사망설’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이들에 대해서는 사안의 중대성을 언급하지 않고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장을 발부했었다.

‘무리한 영장’ 불식시킨 법원
법원의 이 같은 강경한 입장을 의외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실제 박씨가 긴급체포된 뒤 검찰 내부에서도 범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또 영장이 청구됐을 때 200여 편에 이르는 박씨의 글 중 허위사실을 포함한 것은 2건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현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책을 비판하거나 경제 전망과 관련된 의견에 해당해 영장이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박씨에게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의 ‘공익을 해칠 목적’에 대한 개념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헌법소원마저 제기돼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런 관측을 깨고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조강수·고성표 기자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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