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안정 대책 살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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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근로기준법 제24조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 해고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박준성 성신여대 교수는 “지금은 상당수 업체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해도 법적으로 문제될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일자리 지키기가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내수진작을 통한 경기부양을 꾀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선 무작정 근로자를 끌어안고 가기가 버겁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으로 근로자가 해고되지 않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사업주가 휴업·훈련·휴직·업종 전환 등의 방법으로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면 최장 9개월 동안 임금의 상당 부분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다. 중소기업은 임금의 4분의 3, 대기업은 3분의 2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책정된 예산은 583억원이다. 6만5000명의 근로자를 실직 위기에서 구해 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추산이다. 모 대기업 임원은 “대기업 몇 곳만 신청해도 (지원금은)소진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도산 위험에 몰리는 기업이 크게 늘어나는 때는 적자 여부를 따지지 말고 지원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쓰러지는 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1~15일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업체는 2167곳이었다. 보름밖에 안 됐는데도 지난해 10월 한 달치(469곳)의 네 배가 넘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

박덕제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고용지원금을 주는 것은 단기 대책으로 활용하고, 오히려 은행 대출을 손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기업이 자기 발로 설 수 있도록 독려하는, 멀리 내다보는 대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대책이 뒤따라야 단기 부양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직자를 위한 대책도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내년 노동부의 고용안정대책 예산 가운데 90%가 넘는 돈이 고용보험기금이다. 이 돈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고용보험에 가입된 근로자들에 국한된다는 얘기다. 544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은 경기가 어려우면 해고 1순위로 꼽힌다. 이들 가운데 60.8%인 330만여 명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실직하면 실업급여도 못 타고, 직업훈련을 받을 길도 막막하다. 곧바로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비정규직도 법적으로는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지만 중소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입하지 않는 데가 많기 때문이다. 1조원이 넘는 실직 근로자 예산은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저소득층의 생활 실태는 고려하지 않고 급조한 대책도 눈에 띈다. 저소득층 취업 패키지가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저소득층이 취업할 때까지 상담, 직업훈련 등을 최장 1년 동안 무료로 해주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훈련을 받는 동안 이들은 돈을 못 번다. 따라서 훈련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생계를 꾸릴 수 있는 보완책을 강구해 줘야 한다. 정부 대책에는 이런 게 빠져 있다. 당장 먹고살기 힘든 저소득층이 이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은 희박해 죽은 대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인정한다. 노동부 정형우 고용서비스기획과장은 “당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저소득층에게 일정액의 보조금을 주려 했으나 기획재정부가 반대해 못했다”며 “(재정부와)협의해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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