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포커스>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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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진로가 창업 73년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은행에서는 진로가 발행한 어음.당좌수표가 부도처리되고 있고 증시에서는 진로주식 매매가 한때 중지됐다.이런 가운데 채권은행단들이 22일 계열기업중 재무구조가 괜찮은 ㈜진로등 소수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새 주인을 찾아 넘기거나 부도를

내는 이른바'선택적 정리'방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 장진호(張震浩)회장도 몇개 기업만 경영할수 있게 되는등 사실상 진로그룹이 공중분해되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진로그룹이 이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데는 진로그룹 자신의 잘못도 많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특히 張회장이나 진로 임직원의 경영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진로그룹의 총부채는 3조8천억원.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 이처럼 막대한 돈을 끌어들여 여러 기업을 새로 세우거나 인수했지만 모기업인 ㈜진로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기업이 하나도 없다.

지난해부터 불황에 접어들면서 다른 그룹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으나 진로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었다.

그러면서도 김현철(金賢哲)씨나 러시아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과 관련해 경영과 관계없는 루머에 휩쓸리고 있다.

張회장을 비롯한 진로 임직원들은 비록'선택적'이긴 하지만 경영권포기 문제가 거론되는데 대해 언짢다는 반응이다.알토란같은 부동산이 있고 현금이 잘 돌아가는 술장사가 있는데'잠시동안의 자금경색'에 기업까지 내놓아야 하느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진로그룹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가뜩이나 루머의 대상이 되고있는 진로를 금융당국이 훗날 편법 또는 특혜시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원키로 한 것은 한보사태이후 부도 도미노를 막아보자는 것이다.이를 역이용해“부도를 내지 못할테니

버틸때까지 버텨보자”는 식은 책임있는 기업인이 취할 자세가 못된다.당장 매물로 내놓은 부동산 처분에도 신속히 나서야 할 뿐더러 계열기업 정리에도 과감해야 한다.

몸체가 확실히 살고나면 재기는 추후 얼마든지 가능하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진로가 건실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재계뿐 아니라 일반국민들까지 보고 싶어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유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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