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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사랑한 제자 허련의 담백한 붓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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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른한 살에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눈에 들어 그의 제자가 된 전남 진도 출신 시골뜨기 선비. 붓 하나 달랑 들고 왕(헌종) 앞에 나아가 그림 재주를 보이기도 했던 드라마틱한 인생. 소치 허련(1808∼92)은 스승 추사가 타계한 뒤 고향 진도로 낙향해 화실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짓고 화업에 몰두했다. 추사로부터 관념적 문인화를 배웠지만 실경 산수에도 눈길을 줬으며, 거리낌 없이 그림을 팔기도 했던 전업화가다.

소치 허련 작 ‘일속산방도’, 23×32㎝, 1853년. “소치가 (다산의 제자) 황상에게 그려줬으며, (추사·다산 등과 교우한) 초의선사가 교정을 봤다”고 적혀 있다. 당대의 주요 인물이 모두 등장하는 셈이다.

19세기 후반 한양에 오원 장승업(1843∼97)이 있었다면, 남도에는 소치 허련이 있었다. 그러나 소치는 그간 추사의 큰 그늘에 가리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온당히 평가받지 못했다. 소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소치와 그 후예들의 예술적 성과를 조명하는 자리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마련됐다. ‘소치 이백년 운림 이만리’전이다.

산수·화훼·사군자·서예 등 소치 예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묵화 70여 점을 비롯해 운림산방을 이어간 허씨 집안 여섯 후손의 작품 40여 점도 함께 나왔다.

소치의 아들인 미산 허형(1862∼1938)에 이어 광주 화단을 주름잡은 의재 허백련(1891∼1977), 목포의 남농 허건(1908∼87), 임인 허림(1917∼42), 임전 허문(91), 그리고 현대 한국화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허진(46·전남대 미대 교수)까지 5대 200여 년에 이른다. 이들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근대기에 우리 서화가 어떻게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아갔는지 알 수 있다.

전시작의 백미는 기록으로만 전해지다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소치의 ‘일속산방도’(1853)다.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에 겨룰 그림이 없다”고 제자를 인정했고, 소치는 추사의 유배지 제주까지 따라갈 정도로 스승을 극진히 모셨다. 소치가 교우한 인물도 추사와 겹친다. ‘일속산방도’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길러낸 제자 황상에게 소치가 그려준 그림으로, 황상의 거처인 강진 일속산방을 담았다. 남종화풍이되 실경을 바탕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물기 적은 건필과 옅은 담묵 등 소치 화풍의 특색도 오롯이 드러나 있다.

가로 1.8m에 달하는 여덟 폭 병풍을 하나의 화폭 삼아 큰 붓으로 휘휘 그린 ‘묵매도(墨梅圖)’에서는 선비의 강직함과 화인의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대중의 각광을 받았던 모란을 잘 그렸다 해 ‘허모란’이라 불리기도 했던 소치의 모란도도 여럿 걸렸다.

남농 허건의 장기는 소나무 그리기다. 그중에서도 여덟 폭 병풍을 한 화폭 삼아 울울창창한 소나무를 그린‘노송도팔곡병풍(93.5×313.2㎝)’이 단연 압권이다. [이상 예술의전당 제공]

서예박물관 이동국 학예사는 “전통서화가 위축되고 서예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근현대 한국미술에서, 5대째 화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왕성하게 작업을 하는 운림산방이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시와 관련해, 운림산방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세미나가 10일 열린다. 2월 1일까지. 성인 5000원. 02-580-1284.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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