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리스트 정치의 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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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역설적으로 말해 정태수씨가 이번에 역사에 남을(?) 큰 일을 했어.썩은 정치권을 청소할 일대 계기를 제공했잖아.그동안 몇차례 선거에서 국민도 못하고 법도 못했던 정치권 쇄신을 정태수리스트가 지금 하고 있거든.

-맞아,청와대에 이어 정치권도 초토화되고 있어.리스트가 30명인지 50명인지 모르지만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깨끗하다고 믿을 수도 없지.한 솥밥 먹는 한 식구라면 그 가족의 풍속과 노는 가락은 다 마찬가지일테니까.

-오른팔 왼팔 가신 측근이 다 먹었는데 몸통과 머리는 깨끗하다고야 할 수 없겠지.

-그렇지만 대통령도 이젠 힘이 다 빠지고 국회와 정치권마저 이 지경이 됐으니 대혼란.대혼돈 아니야.

-거대한 권력 공백.리더십 공백현상이 오고 있는거야.국민편에서 보면 믿을 사람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된거지.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갈지 걱정이 아닐 수 없어.

-지난달 검찰수사팀 교체후 한보 몸통수사에 좀 활기를 보이는가 했더니 갑자기 정치권 폭풍이 온 까닭이 뭐야.

-정치권비리 수사도 하긴 할 일이지.그러나 순서로 보면 거액대출 의혹 규명을 위한 은행장.전청와대경제수석등에 대한 수사가 앞서야 하고,김현철씨 관련 수사가 중심이 돼야지.몸통실체를 먼저 밝히고 근처에서 돈먹은 정치권 비리를 터는 것은 그 다음 일이지.

-순서가 그렇게 바뀌니까 정치권에서 음모론이 나오지.

-순서가 바뀌어 득볼 사람이 누구야.

-그야 뻔하지.현철이 사건의 초점을 흐리고,정치권이 위기에 몰리면 이른바'정치적 해결'도 손쉽게 유도해 낼 수 있을테고,돈먹은 정치권이 현철이 수사에 이래라 저래라 하기도 어려울테고….

-검찰수사팀 교체후 여권 상층부에선 현철씨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체념같은 것이 보이더니 4월초 3金회담후 달라진 것 같아.정치적

해결이니,한보 아닌 다른 사건으로 구속 못한다는'별건(別件)구속불가'니

하는 말이 나오더니 요즘엔

현철씨를 구속하면 대통령이 직무를 볼 수 없어 헌정중단이 온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대검중수부장이“말못할 사정이 많다”“사방이 지뢰밭이다”고 한 것을

보면 대강 알만 하잖아.압력이 큰가봐.

-YS가 아직도 마음을 못 비운 것같구먼.민주계 내부에서 아들 살리려고

옛동지 다 잡는다는 말이 나온다잖아.

-그런 방식으로 아들을 구할 수 있겠어.오히려 일을 더 꼬이게 만들지.검찰이

또 수사를 흐지부지한다면 광고규탄 뿐 아니라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텐데….

-지금 항간에선 조기 대선론.국회 해산론같은 소리가 심심찮게

나도는가봐.이런 식으로 의혹규명도 안되고 혼란만 가중될 바에야 선거를

몇달 앞당겨 빨리 새출발하는 게 낫다는 논리지.그리고 국회도 벌써 몇십명

의원이 금이 갔는데 무슨

낯으로 임기를 계속하느냐는 거야.

-거,정말 엄청난 얘기군.그런 헌정변칙사태가 와서야 안되지.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정신들 차려야지.잔재주나 테크닉으로 상황을

극복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어.

-정치권을 먼저 조진다고 한보와 현철게이트가 덮어지거나 그냥 넘어갈 수

있겠어.일시적으로 초점이 흐려지거나 얼마간 유예될 뿐이지.

-무엇보다 청와대가 검찰수사에 개입하면 안돼.이 정권에서 제대로 규명되지

않으면 다음 정권에서 재수사가 불가피해질 텐데,또 불행한 전직대통령이

나와서야 되겠어.

-검찰 내부의 자존심과 불만도 생각해야지.정치권 수사에서 벌써 검찰의

오기 같은게 느껴지잖아.검찰도 이젠 호락호락 말을 안들을걸.

-YS가 정말 마음을 비워야 해.남은 열달은 오로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에만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나가야 할거야.그래야 걱정하는

헌정변칙사태의 우려도 줄어들 수 있고,검찰수사 결과에 대한 국민신뢰도

얻을 수 있어.

-아들문제에 집착할수록 상황은 악화되고 위기는 깊어진다는 말이지.

-정치권도 환골탈태해야지.여야 모두 일대 자기 개편을 하고 비리의혹

당사자는 일선에서 후퇴.자숙해야지.정당 조직.운영과 선거.정치자금등의

대대적 개편.개혁이 불가피해졌어.

-이제'한보적'(韓寶的)인 정치.경제.권력운용은 안되는 시대로 들어가는거야.

-열달을 잘 넘겨야 할텐데,또 어떤 악수(惡手)가 나올지 걱정이군.

송진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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