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말바꾸기 경연 - 한푼 안받았다더니 검찰 갔다오면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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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한국당은 14일 확대 당직자회의 결과를 브리핑하지 않았다.“전달할게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속사정은 달랐다.언론보도에 대한 집중 성토가 있었고 그걸 옮기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한국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은 이에 앞서 자신이 검찰조사를 받은 사실과 관련,이회창(李會昌)대표에게“죄송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당대표에게는 사과하면서도“나는 한보와 무관하다”던 이전 발언에 대해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국민들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여야 정치인들은 요즘 이구동성으로“언론과 검찰이 너무한다”고 열을 올린다.

그러나 여론은 정반대로“어떻게 저렇게 파렴치한 사람들이 정치지도자냐”며 들끓고 있다.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정치인들이 한 발언들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점이 쉽게 이해된다.

국민회의의 대선 예비주자로 나선 김상현(金相賢)의원은 그동안 “출생이후 한보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여러 기업의 돈을 받아왔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한보돈은 안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검찰에서 슬그머니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했다.그러면서“5천만원 이상 받았으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오히려 펄펄 뛰었다.5천만원은 문제가 안된다는 얘기다.

그는 아직 국민들에겐 아무런 해명도 안하고 있다.

신한국당의 속칭'9룡(龍)'중 하나인 김덕룡(金德龍)의원은 여러차례 기자회견을 통해“음모설”을 제기해왔다.“혹시 주변에서 한보돈을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여러번 확인했지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다 자신이 세운 장학재단의 상임이사가 돈을 받은 사실이 나오자“장학재단은 내가 주도적으로 설립했지만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보고도 안받았다”고 발을 뺐다.그가 국민에게 한 사과는“주변정리를 못한 책임이 있다”는 정도다.

유명앵커 출신인 신한국당 박성범(朴成範)의원은“한보가 뭘보고 나에게 돈을 주느냐”고 말해왔다.민주당 이중재(李重載)상임고문은 부인 병원비만 받았다고 했다가 추가로 받은 돈이 드러났다.

정치판의 지도급 인사들이 이처럼'교묘한 말바꾸기''대놓고 배짱부리기'로 나오자“정치권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믿겠다”는 국민적 비난이 나오고 있다.영국에선 최근 정치권의 로비문제로 10여명의 관련 정치인들이 대(對)국민 사

과성명을 낸 뒤 정치판을 떠났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임으로 몰고간 미국 워터게이트사건도 도청행위 자체보다 지도적 정치인의 거짓말이 더 문제가 됐다.

해당 정치인들은 국민을 상대로 한'말장난'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을 어려워 해야한다는 여론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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