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전지 삼키면 치명적 - 목안으로 넘어가면 식도.위장 천공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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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전자계산기나 시계에 들어있는 손톱만한 원판형 전지가 당신 아이의 생명을 노린다'.

이같은 의사들의 경고는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외국의 경우 77년 수은전지를 삼킨 아이의 기관식도가 뚫어져 생명을 잃은 사례가 보고된 뒤 매년 그 숫자가 증가추세에 있는 것.

우리나라도 최근 이같은 원판형 전지의 해독을 우려할만한 사고가발생했다.네살난 사내아이 콧속에 수은전지가 들어있는 것이 발견돼 한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이를 제거한 것.그러나 이후 계속해 코에서 악취나는 고름이 나오자 대학병원을 찾았

고,전지가 위치했던 연골에 직경 1㎝의 구멍이 뚫려있음이 의료진에 의해 확인됐다.부모의 추정으로 콧속에서 전지가 머무른 기간은 약 20시간.

이같은 사례를 이비인후과학회지에 보고한 충남대병원 이비인후과 나기상(羅基庠)교수팀은“원판형 소형전지는 작고 반짝거리기 때문에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며“전지의 사용량이 증가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보고되지 않은 피해사

례도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외국의 경우 가장 많이 보고되는 것은 삼키는 것.식도에 걸려 화상을 입거나 협착.천공을 일으키며 위에 들어갈 경우 심각한 위장손상을 야기할 수 있다.

한양대병원 소아외과 정풍만(丁豊滿)교수는“위에는 강산인 위산이 분비되기 때문에 니켈합금인 덮개가 쉽게 부식된다”며“배설될 때까지 기다리는 다른 이물질과 달리 전지는 응급으로 빨리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또 전지가 귀에

들어갈 때도 고막천공.외이도 피부 괴사.이소골(耳小骨) 파괴.안면신경 마비등을 일으키므로 서둘러 제거해야 한다.

한번 쓰고 버리는 이들 1회용 전지는 시계에 많이 사용되는 수은전지,계산기에 주로 쓰이는 리튬전지등 4~5종이 시중에 나와 있는데 인체독성은 함유된 물질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

대표적인 위해성은 크게 세가지.

첫째는 전해질에 의한 직접적인 괴사효과.부식물질인 수산화칼륨(KOH)과 수산화나트륨(NaOH)이 유출돼 피부를 썩게 한다.이들 물질은 양잿물과 같은 강알칼리로 부식강도는 쇠도 녹일 정도.

둘째는 음극과 양극 사이를 흐르는 전류가 점막에 화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일단 수은전지가 몸안의 습한 환경에 노출되면 한시간내에 직류전류에 의한 화상이 시작되고,이어 전지 덮개가 부식되면서 유해 화학물질이 쏟아져 나와 조직손상이 확산된다.

羅교수팀의 실험에 따르면 토끼의 식도에 들어간 수은전지는 24시간만에 식도에 천공을 일으킬 정도로 조직을 괴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셋째는 장기적인 중금속 중독의 우려.

수은전지의 경우 체내에 오래 머무르면 산화수은이 수분에 용해되면서 체내에 축적될 수 있다.

이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이 최선.그러나 일단 사고가 나면 빠른 시간안에 이를 제거해주어야 한다.아이가 전지를 삼켰을 때는 위내시경을 통해 빼내고,귀와 코에서 누런 농이나 냄새가 나면 우선 이물질 삽입여부를 확인,전지일 경우 독성에 따른 괴사가 계속 진행되므로 꾸준한 관찰과 처치가 필요하다.

<고종관 기자>

<사진설명>

네살난 남아의 코에서 빼낸 수은전지.지름이 1백원짜리 동전의 3분의1 정도 크기다.A는 음극,C는 양극으로 전류가 흐르면서 피부점막에 화상을 입히고 유출된 부식물질이 조직괴사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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