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망신살 뻗친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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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한민국 국회가 우습게 됐다.국제의회연맹(IPU) 총회를 주최해놓고 국회의장부터 여야의 중진 의원 30~40명이 부정한 돈을 받았다고 한바탕 난리다.대한민국까지 우습게 되는게 아니냐는 시중의 여론이 따갑다.

한보 의혹은 입법부 수장인 김수한(金守漢)의장마저 5천만원을 받았네 마네 하는 구설수에 올랐다.우리측 대표선수로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 반입을 질타한 김현욱(金顯煜)의원까지 정태수(鄭泰守)리스트에 거명돼 더욱 창피한 실정이다.

IPU총회는 외국 의원끼리의 잔치로 전락했다.지난 11일 열린 국회 사무총장 주최의 한 행사는 준비한 음식이 모두 바닥나는 성황을 이뤘지만 우리 의원은 한사람도 없고 행사 도우미 몇명만 보였다.

10일 저녁의 개막 리셉션도 마찬가지였다.1천8백여명이 참석한,대회기간중 가장 큰 행사임에도 우리 의원들은 40여명밖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참석했던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민망해했다는 후문이다.

한국 국회의원들은 어디 있었을까.4명은 이미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재판중이다.김덕룡(金德龍).김상현(金相賢).김용환(金龍煥)의원등 10여명은 검찰의 소환을 받았고 이번주까지 10여명 이상이 대기중이다.

국민회의 한 초선의원은“이러다 옥중에서 원내교섭단체 한보당(韓寶黨)이 결성되는게 아니냐”고 혀를 찼다.

19명의 의원들은 한보 청문회에 있었다.준비도 없이 나섰다가 증인에게 되레 무안당하거나 훈계조의 일반론을 늘어놓아 유권자들의 정치 불쾌지수만 높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나머지 대부분의 의원들은 사무실에 앉아 주로 자신의 장래를 고민

했다.정치권 빅뱅은 오는지,청와대측의 진의는 무엇인지 등이 이들의 주 관심사였다.

IPU는 해마다 봄.가을 두차례 회원국을 돌아가며 국제문제를 토의하면서 상호이해와 친선을 다지는 잔치판이다.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총회엔 전세계 1백21개국에서 모두 1천여명이 참석했다.세계의 언론들도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바로 이때 의원들이 줄줄이 검찰청을 드나들고 있으니 마치 우리의 치부를 보여주기 위해 잔칫상을 차린게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국민들을 더욱 짜증나게 하는 것은“받은 적이 없다”고 뻗대다“알고 보니 받았으나 대가성이 없는 돈이었다”는 의원들의 얼굴 두꺼움과 얄팍한 변명이다.

정치를 오래 했다는 의원일수록 청탁(淸濁)을 안 가리고 돈을 받는다는 사실도 확인됐다.'묵은 생강이 맵다'는 말이 맞다면 다선.중진의원부터 현재의 잘못된 정치풍토에 대해 고해(告解)하고 제도적.관습적 해결방안을 만드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김현종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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