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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85. 한·일 월드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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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002년 초, 금강산에 가서 한·일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는 행사를 했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제프 블라터다. 블라터와의 인연을 소개해야겠다.

나는 1998년 프랑스 파리 북쪽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프랑스 월드컵 개막전을 참관했다.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회장 자격이었다.

그런데 개막전 직전에 열린 FIFA 총회에서 오랫동안 축구황제로 군림했던 아벨란제 회장이 물러나고 사무총장이었던 블라터가 회장이 됐다. 블라터는 나와 함께 GAISF 집행위원이었던 케이저의 사위다.

그런 인연으로 블라터가 회장으로 당선된 날 저녁, 블라터와 블라터의 딸, 그리고 GAISF의 슈프 사무총장과 넷이서 본부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대단한 만찬은 아니었고, 그야말로 조용하고 소박한 식사였다.

개막전에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겸 FIFA 부회장 내외와 사마란치 IOC 위원장, 아벨란제 전 FIFA 회장을 모두 만났다. 한국은 이미 다음 대회인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권을 딴 상태였기 때문에 프랑스 월드컵의 조직과 운영 등을 자세히 둘러봤다. 프랑스는 기존 프로팀 경기장을 약간만 보수해서 사용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경기를 치르기엔 훌륭한 시설이었다.

한국도 잠실주경기장 등 기존의 경기장을 개축하고, 몇 개만 신축하기로 했다. 공동 개최가 됐으니 많은 경기장도 필요 없었다. 그런데 김종필 총리 말이 “갑자기 청와대에서 지시가 내려와 모두 신축하기로 됐다”고 했다.

덕분에 월드컵은 훌륭히 치렀으나 월드컵이 끝난 뒤 대부분의 경기장은 관리 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 무리를 하면 결국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100원을 써서 1만원의 효과를 내는 것이 스포츠 외교인데 1만원을 써서 100원의 효과만 있다면 하지말아야 한다.

2002년 5월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한·일 월드컵 개막전이 열렸다. 대신 6월 30일 결승전은 일본에서 벌어졌다.

역대 월드컵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하던 한국은 16강은 물론 4강에 올라 국민을 열광시켰다. 우연하게도 서울올림픽 때 한국의 성적이 4위였는데 월드컵에서도 4위였다. 붉은 물결로 뒤덮은 거리 응원은 세계적이었다.

월드컵 기간에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입장권 구하기였다. 조직위 간부도 구하기 힘들었는데 나는 블라터 회장과의 친분으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세네갈의 음바예 IOC 위원이 프랑스와 세네갈이 맞붙은 개막전 표 4장을 부탁했다. 무시했더니 다시 사마란치를 통해서 부탁이 왔다. 사마란치의 부탁이라면 내가 거절 못 할 줄 알았나 보다. 2800달러를 주고 4장을 구해 줬는데 이게 나중에 횡령으로 몰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월드컵이 열리는 중에 서해교전이 벌어졌다. 많은 해군 장병이 희생됐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해군병원 빈소에 갔는데 국방장관과 해군장병들 밖에 없어 의외였다. 모두 월드컵 열기에 묻혀버리는 것을 섭섭해 했다. 최근에야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돼 그나마 다행이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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