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책에 길을 묻다] 촛불은 ‘문화 전쟁’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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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008년은 과연 ‘촛불의 해’였다. 사회 전반을 뒤흔든 촛불 100일은 보는 이에 따라 천의 이름으로 불리겠지만, 차제에 긴 호흡의 문화사적 접근도 필요할 듯싶다. 미디어 예언가로 불리는 마셜 맥루한의 시각을 잠시 빌리자면 촛불은 무엇보다 세대전쟁·문명전쟁이었다.

즉 아날로그세력과 디지털전자세력의 부딪침이 촛불인데, 이게 말처럼 간단치 않다. 산업화·민주화 세력과 겹치며 양상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두 세력은 세상을 보는 눈에서 감수성까지 하늘과 땅이다. 식탁 안전, 광우병이란 그저 빌미다. 지난 10년 우호적인 주변 환경을 만들었고, 최고권력(대통령)까지 배출했던 막강 디지털세력은 올해 초 출범한 새 정부를 앙시앵레짐(구체제)으로 규정한 뒤 강한 압박을 감행해본 것이 촛불의 실체다.

상식이지만 유모차부대·촛불 소녀가 보여주듯 촛불에는 여성 코드가 숨어있다. 학생·무직자 등 ‘주변부 코드’도 무시 못한다. 때문에 촛불은 기성세대·남성·중심부세력(범아날로그)에 도전하는 신세대·여성·주변부세력(디지털연합)의 도전이라는 양상을 보였다. 판이 결코 간단치 않은데, 미디어 빅뱅 1번지인 한국을 무대로 이런 상황이 전개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맥루한이 이 현장을 지켜보았다면 뭐라 할 것인가. 그는 낙관론자라서 전자문화가 옛 원시사회의 활력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걸 ‘재 원시화(reprimitivization)’라고 규정했다. 이성·내면성·남성을 가르쳐온 활자문화의 독재를 영상·이미지 중심의 쿨미디어(디지털)가 밀쳐내며 엽기 발랄한 신세계의 문명을 연다는 것이다.

이성의 소멸, 주변부의 등장,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유행어도 그 맥락인데, 하지만 이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예언은 예언이고, 현실은 현실이 아니던가. 천하의 맥루한도 양 세력 앞에 상생의 지혜부터 조언을 했으리라. 왜? 촛불은 모든 걸 태워버릴 기세였다. 너무 조급했다. 소모적이고 적대적인 지금 상황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황량한 ‘전자사막’이다.

“전자사막에서 유목하며 살아남기 위해/노새를 살까 양을 살까/…/여전히 온라인으로 켜놓을까 아니면/ 문을 안으로 닫아걸고 막고굴을 하나 팔까….”

여성 시인 이원의 작품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키워드는 전자사막과 막고굴이다. 최근 이남호의 『문자제국 쇠망약사』을 읽으며 만난 뛰어난 시인데, 본래 막고굴이란 문명보존과 수행을 위한 실그로드 중간의 석굴이 아니던가. 디지털의 한복판에서 완전 아날로그(노새·양·막고굴)를 천연덕스럽게 등장시킨 것 자체가 기막힌 역설이다.

그럼 막고굴은 무얼 상징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그래도 책읽기다. 맥루한도 기꺼이 동의해줄 것이다. 인류가 만든 미디어 중 가장 믿을만한 게 책이 아니던가. 세밑과 정초 각자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음미해보는 것도 훌륭한 나만의 막고굴이다. 한국사회가 슬기를 모아 내년 한 해 전자사막을 함께 건너는 지혜도 책의 성찰에서 가능하겠고….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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