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일본의 역사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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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일본에서 역사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일본의 양심과 정론을 표방하는 아사히(朝日)신문과 보수 우익을 대변하는 산케이(産經)간 논쟁이다.4월부터 바뀐 중학 역사교과서의 종군위안부 기술에 대해 일부 학자.정치가들이 삭제를

요구하고 나선 데서 논쟁이 발단됐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1일자 사설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전외상의 인터뷰를 실어'역사에서 눈을 돌려선 안된다'고 일갈했다.자료 및 증언으로 위안부 모집.이송.관리 등이 강제였음은 명백하다.두번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선 과

거를 뚜렷이 기억해야 한다.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준열히 나무랐다.

다음날 산케이신문은'파탄을 보인 아사히신문 보도'라는 제목으로 노골적인 공격을 했다.위안부의 관리 주체가 민간업자인데 어째서 강제고용이냐.점령지 위안부 80%가 강제를 주장하지만 전쟁과 능욕 피해자를 혼동해선 안된다.이미 전범자는

재판을 받았다.어린이의 건전한 육성을 위해 교과서 기록을 삭제해야 한다고 맞섰다.

2일자 아사히 사설은'무엇 때문에 역사를 배우는가'를 되묻는다.“종군위안부로서 강제적으로 전쟁에 보내진 젊은 여성도 다수 있었다”정도의 교과서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민족긍지가 손상되지도 않는다.중요한 사실은 불리한 것

에 눈감고 과거에 잘못은 없었다고 자랑하는 자기긍정만의 일본인이 늘어난다는 점이다.교과서를 삭제한다고 해도 역사 진실은 삭제되지 않는다.

바로 같은 날,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방자치단체가 야스쿠니(靖國)신사참배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정교(政敎)분리를 규정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3일자 아사히 사설은'정교분리에 입각,명확한 선을 긋는 획기적 판

결'이라고 평가했다.이 판결이 총리 및 각료의 야스쿠니 공동참배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았다.같은 날 산케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며 전몰자의 추도.위령은 국민.국가와 공공단체의 당연한 의무라고 했다.

이 역사 논쟁에서 우리는 일본의 양심이 이만큼 성숙했음을 보고 아직도 억지의 국수논리가 그만큼 강하다는 사실도 확인한다.일본의 양심과 여론이 따로 노는지,언젠가는 함께 할 것인지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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