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新빈곤층’의 눈물 닦아 주는 데 예산 더 써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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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02면

서민층이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문을 닫거나 휴업하는 음식점이 전국적으로 매달 2만 개에 이른다. 서울에서만 한 달 평균 3000명이 개인파산을 신청한다. 사(私)금융을 쓰다가 고리(高利)에 걸려들어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도 도처에 넘쳐 난다.

2008년 12월, 대한민국의 모습은 슬프고 고단하다. 이처럼 멀쩡히 경제생활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진 계층을 ‘신빈곤층’이라고 한다.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어렵지만 중층에서 하층으로 막 추락했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안전망(기초생활보호대상 등)에서도 제외돼 있는 계층이다. 현재 300만 명 정도가 이런 처지에 놓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신빈곤층을 세심하게 보살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들은 ‘빈곤의 함정’에 아직 완전히 갇히지 않은 사람이다. 조금만 도와주면 중산층으로 복귀해 정상적 경제생활이 가능한 계층이다. 빈곤은 늪과 같아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 극빈층 보호와 사회 복귀를 위해 엄청난 나랏돈을 쓰고 있지만 자활 성공률이 3%밖에 안 된다는 조사도 있다. 따라서 함정에 본격적으로 갇히기 전에 신빈곤층을 건져 올린다면 장차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신빈곤층의 추락을 방치하면 사회 불안, 소요 사태가 온다. 중산층은 사회의 ‘시계추’다. 신빈곤층의 증가는 중산층의 ‘하향해체(下向解體)’를 의미한다. 중층에서 이탈해 하층으로 내려앉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작은 외부 충격에도 공동체는 깨질 수밖에 없다. 돈을 풀고 경기를 살려 경제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해도 고착화한 빈곤층이 사회 안전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2008년 12월과 2005년 12월에 실시한 중앙일보 설문조사를 비교해 보면 우려가 수치로 드러난다. 불과 3년 새 사회를 떠받치는 ‘핵심 중산층’은 감소하고 중층에서 탈락했거나 그 위험성이 큰 ‘한계 중산층’이 부쩍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정부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경제점검회의에서 신빈곤층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내년 예산을 살펴보면 재탕·삼탕의 느슨한 대책만 나열돼 있다. 일자리를 잃었거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일시적 도움을 주는 긴급 복지재원을 고작 110억원가량 늘렸다. 중산층 붕괴를 막고 쏟아져 나오는 빈곤층을 건져 올리기에 재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대책은 안이하다. 신빈곤층을 겨냥한 긴급 복지망을 좀 더 촘촘히 짜고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며, 사회 복귀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재원을 더 늘려 당장 선제적이고 압도적인 신빈곤층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 호미로 막을 때를 놓치면 나중에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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