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생명복제와 과학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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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전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이언 윌머트 박사가 양(羊)복제 실험에 성공했다는 발표를 한 후 전세계적으로 생명 복제의 윤리성과 관련연구의 규제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윌머트 박사의 실험은 성숙된 체세포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생식세포에 의존하던 과거의 동물 복제실험과 다르며,이것은 과학적으로는 큰 발전이지만 동시에 윤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과거의 복제실험이 일란성 쌍둥이를 여럿 만드는 과정이라 한다면 이번 윌머트 박사의 실험은 다 자란 개체(個體)로부터도 유전적으로 똑같은 생명체의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실험 기술이 인간에게도 큰 문제없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유전과학자들의 의견이고 보면 그 사회적 윤리적 파장의 심각성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이미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에서는 생명복제에 관한 법률 제정을 검토하고 있으며,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국회 답변을 통해 그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생명 복제에 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유전과학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시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문제는 어느 정도의 규제가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과학기술의 발전에는 항상 순(順)기능과 역(逆)기능의 양면성이 있고,또한 획기적

인 발견이 이루어질 당시에는 관련 기술이 궁극적으로 어디까지 발전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전자(電子)를 발견해 20세기 전자정보문명의 기틀을 마련한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이 당시“전자의 실용가능성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알고 싶지도 않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또한 원자핵의 비밀을 밝힌 것은 과학자들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었지만 그 지식은 곧 원자폭탄의 제조로 이어졌고 강대국간의 핵무기 경쟁은 인류가 자멸(自滅)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주기도 했다.

유전공학에 의한 인간복제도 비슷한,아니 오히려 더 큰 위험성을 안고

있다.핵폭탄은 원리를 알고 있어도 실제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설이 필요해 쉽게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으나 인간복제는 원리만

알면 조그만 실험실에서도

실현이 가능해 그 악용(惡用)을 막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일부에서는 인간 복제에 이를 수 있는 모든 연구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실제로 이탈리아와 같이

종교적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인공수정을

포함한 모든 동물복제 실험을 금지시켰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자를 이용한 연구는 유전적 질환 치료나 장기

이식등 인류의 건강복지에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다.이러한

가능성을 단지 종교적 이유나 오용의 위험성 때문에 막아버리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사실 사람을 복제하는 것에 대해선 거의 모든 과학자들도 반대하고 있다.양 복제에 성공한 윌머트박사도 미국의회 청문회에서“인간복제는 비도덕적인 행위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수정세포를 이용한 기술은 이미 인간복제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지만 아직까지 실제로 인간복제를 수행한 과학자는

없다.오히려 세계의 발생생물학자들은 인간복제 금지를 포함한 생명윤리

헌장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맹목적인 호기심이나 영웅심리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프랑켄슈타인'같은 과학자는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만일을 위해 인간복제에 관한 명백한 금지조치가 필요하겠으나

인간 유전자를 이용한 기타 연구는 가능한한 허용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관련전문가들의 검토를 통해 금지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규제나 금지는 과학연구에 필수적인 창의력에 극약이므로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반면 생명 복제기술 이용에 관한 국가권력이나 상업자본의 역할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사회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한 사람의 과학자라기보다 조직체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또한 핵폭탄 제조의 예에서 보듯이 개인적으로는 선량한 시민도 국가권력이나 조직체 안에서는 그 조직이 설정한 목표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과학연구의 창의성을 저해하지 않고 권력자의 욕심이나 상업적인 이익에 의해 유전공학 기술이 남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규정이 제정되기를 바란다. 오세정〈서울大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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