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적자금은 '눈먼 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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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공적자금의 파행운영 실태를 보면 한심하다 못해 분노가 인다. 예금보험공사.자산관리공사 등 정부 기관들은 공적자금을 방만하게, 또는 편법으로 관리해 수천억원의 낭비를 초래했다. 공적자금 운용수익 수천억원을 회사 수입으로 잡았고, 부실 기업의 빚을 많이 깎아주거나 임직원의 재산추적을 소홀히 해 수천억원의 손실을 끼쳤다. 지급보증이 있는 99억원짜리 채권을 단돈 100원에 넘긴 사례도 적발됐다. 공적자금으로 연명하는 금융기관들이 임직원 보수를 왕창 올려주고 주택구입자금 등 사원복지에 흥청망청 돈을 썼다. 이렇게 낭비된 돈이 1조76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부실 기업주들의 행태는 더욱 충격적이다. 부도 직전 회사 돈 수백억원을 빼돌려 호화주택을 사고, 이를 폭로하겠다는 노조에 100억원대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자신의 이혼위자료나 자녀유학비로 수십억원을 사용한 일도 있었다.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의 집행과 운용, 사후관리의 전 과정이 도덕적 해이와 무책임.횡령 등으로 부실화한 것이다. 이러니 '공적자금은 눈먼 돈''보는 사람이 임자'란 소리를 듣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감독기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과연 이 돈이 개인 돈이었다면 이토록 허술하고 방만하게 관리했을까.

이번 감사 결과를 보면 3년 전 1차 특감 때의 지적과 흡사한 경우가 많다. 아직도 허점이 많고, 정신을 못 차렸다는 얘기다. 공적자금 운용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특히 방만한 운용 또는 감독.관리 소홀로 엄청난 손실을 끼친 경우에 대해선 보다 엄중한 징계가 따라야 한다. 이번 감사에서도 수천억원의 낭비를 적발했지만 정작 징계는 솜방망이 수준에 그쳤다. 이런 식으로는 비슷한 사태가 되풀이되게 된다. 공적자금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도 보완과 아울러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잘못에 대한 엄중한 징계가 병행돼야 한다. 국회도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