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미국.중국관계와 한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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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워싱턴은 냉전종식 이후 대외관계에서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

헬싱키 미.러 정상회담만 해도 옛소련과의 협상 때보다 힘든 대좌(對坐)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그래도 미국인들이 러시아를 대하면서 문화적 차이 때문에 느끼는 갈등은 크지 않은 것 같다.러시아의 경제사정이 워낙 어렵고 정치적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에 비하면 중국은 미국에 어려운 상대임에 틀림없다.매년 두 자리 숫자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여력을 군사현대화에 투자하며 역내대국에서 세계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이다.

반면 미국은 클린턴정부 출범 이후 중국의 인권문제와 불공정무역관행등을 들먹이며 중국의 신경을 건드려 왔다.미국은 중국의 인권개선노력 부진을 들어 매년 봄 최혜국대우 연장 때마다 중국을 긴장시켰고 지난해 중국의 대만해협 무력시위 당

시에도 항공모함을 파견,강경대응함으로써 중국에 수모감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미국의'중국 길들이기'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중국을 아는 이들일수록 미국이 벌이는 위험한 게임을 우려하고 있다.그리고 이같은 우려의 목소리는 민주당선거자금에 중국정부의 돈이 유입됐다는 미국언론보도 이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취임초 표류(漂流)하던 클린턴의 대중(對中)정책이 가까스로'건설적 개입정책'으로 가닥잡기 시작한 마당인지라 양국관계를 다루는 이들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미.중 관계에 잠복한 문제들은 덩샤오핑(鄧小平)사망과 홍콩반환이라는 굵직한 일들이 겹친 올해,다루기에 따라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한편 양국관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 또한 적지 않다.

북한의 생존과 장래를 결정하는 데 미.중 두 나라의 입김은 압도적이며 북한내 급변사태나 혹은 평화적 통일논의에 있어서도 양국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미.중 관계의 부침(浮沈)속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논하는데 있어서는 양국간 협조가 비교적 순조롭게 이뤄진다는 점이다.핵협상 때도 그랬고 4자회담에 관해서도 미국은 중국의 협조적 자세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다만 한반도 통일이 현재 미.중 양국이 선호하는 현상유지,혹은 분단상황을 극복할 때 가능하다고 한다면 양국을 상대로 한 우리의 외교는 전략적 사고와 함께 엄청난 세련미를 요구한다.더욱이 대북(對北)정책을 놓고 한.미간에 의견차가

노정될 때마다 한국이 중국에 대해 묘한 미련을 가진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은 현재로선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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