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B, 달러 무제한 풀어 경기 살리기 … 사실상 ‘최후의 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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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가 ‘데프콘1’(전시 상황)을 선언한 것이다.”(마켓워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16일(현지시간) ‘제로(0%)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의 사용을 공식화한 데 대한 미국 언론의 반응이다. 시장은 이번 조치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6일 미국 FRB가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0)’ 수준으로 낮추자 주식시장이 급등했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식 중개인 두 명이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뉴욕 AP=연합뉴스]


충격적인 이유는 기준금리를 제로로 낮춘다는 것은 중앙은행이 사실상 금리 정책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금리를 더 이상 낮출 수 없다면 금리 정책은 총알 없는 총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앞으로는 양적 완화 정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FRB가 발권력을 동원해 찍어낸 돈으로 시장에 돈을 직접 푸는 것이다.

FRB가 금융회사의 장기 국채와 모기지채권 등을 사들이면, FRB의 돈이 금융회사로 들어가게 된다. 그만큼 금융회사는 대출 여력이 커진다. 이는 시중의 금리를 끌어내리고 기업·가계의 신용경색 완화→투자·소비 확대→경기 회복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연구위원은 “FRB로선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터지자 FRB는 지난해 9월부터 5.25%였던 기준금리를 1%까지 낮췄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올 9월 이후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포함해 1조 달러 이상을 시장에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돈이 돌지 않는 신용경색이 계속됐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실물경기는 갈수록 나빠졌다. 뉴욕 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미국에선 올 들어 11월까지 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실업률은 올해 6.5%에서 내년 9%로 높아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대가가 따른다. FRB가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를 찍어내고, 저금리 상태를 지속하면 달러 가치는 약세를 면하기 어렵다. 투자자금이 고금리와 강한 통화를 찾아 미국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다. 이는 미국 자본수지의 악화로 연결되고, 달러 가치를 더 약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을 우려도 있다. 자칫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해 온 FRB의 영향력도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양적 완화 정책이 성공을 거둬 경기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많이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게 또 다른 과제다. 자산 가격의 또 다른 거품을 만들 수도 있다.

일본에서도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을 썼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1990년대 자산 버블이 꺼지면서 경기침체가 심해지자 일본중앙은행(BOJ)은 98년 9월 제로금리 정책을 시행했다. 잠시 경기가 호전되자 제로금리 정책을 해제했지만 다시 불황이 덮치면서 BOJ는 제로금리보다 한층 강한 양적 완화 정책을 도입했고, 2006년 3월까지 이를 유지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정성춘 일본팀장은 “일본은행의 초강수에도 시장은 별 변화가 없었다”며 “일본 경기가 회복된 것은 양적 완화 정책 덕분이 아니라 전 세계 경기 호황으로 일본 기업의 수출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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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 정책이 성공할지의 관건은 실물경기가 언제쯤 상승 추세로 전환될 것인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정 팀장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기업과 개인의 자산가치가 크게 떨어진 상태여서 돈을 많이 푼다 해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유동성 공급과 경기부양 정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기준금리를 0%까지 낮췄는데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을 때 쓰는 비상 수단으로,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금융회사에 돈을 직접 공급하는 방식이다. ‘제로금리+통화량 공급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이 정책을 쓰면서 하루짜리 콜금리가 0.001%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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