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고 졸업반 자격증 평균 11개 ‘기적’

“자동차 엔진 분해·조립은 눈 감고도 해요.”

15일 오전 전남 보성군 보성실업고(교장 이기재) 자동차 실습장. 자동차 엔진에 매달려 실습 중인 학생들이 실력을 뽐냈다. 이들은 컴퓨터는 물론 크레인·불도저·지게차 같은 건설기계장비도 자유자재로 다룬다. 이 학교 자동차과 3학년생 40명은 재학 중 국가기술자격증을 449개나 취득했다. 1인당 평균 11개씩이다. 전문계 고교생들은 보통 1~2개 자격증을 따고 졸업한다.

전남 보성실업고 자동차과 3학년 학생들이 교내 실습장에서 담임교사 윤정현씨(中)와 함께 실습을 하던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26개 자격증을 딴 박지혜양(앞줄 왼쪽)을 비롯해 자동차과 3학년생 40명은 1인당 평균 11개씩의 자격증을 땄다. [프리랜서 오종찬]

자격증을 7개 이상 따 전남도교육감의 표창을 받은 학생만 33명에 이른다. 자격증 26개를 따 전국 최다를 기록한 박지현(18)양은 “자격증을 여러 개 가질수록 사회에 나가 더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씩 따 왔다”고 말했다. 박양은 자동차 검사와 정비기능사뿐 아니라 천장크레인·기중기·불도저·롤러·굴삭기·지게차 운전기능사 등 건설기계분야의 거의 모든 자격증을 갖췄다. 천장크레인은 무역항에서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장비로 여성 운전기능사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상공회의소서 보는 한자, 무역영어, 비서 자격증도 땄다.

박양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해 입학했지만 실업고에 다닌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한동안 외출도 하지 않았다”며 “졸업을 앞두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게 가장 큰 결실이다”고 말했다. 박양은 조선이공대에 장학생으로 진학할 계획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떠밀리다시피 학교에 들어왔다. 담임교사 윤정현(48)씨는 가정방문 후 여러 사정으로 크게 위축돼 있는 제자들에게 자격증을 따게 해 용기를 심어주자고 작정했다. 학기 초부터 학생들에게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도록 독려했다. 자동차 정비업체를 운영하거나 대기업체 중견사원이 된 옛 제자들을 불러 학생들에게 재학시절 딴 자격증이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한지를 설명하도록 했다.

학생들도 그룹활동을 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자동차·건설기계·컴퓨터 분야의 교과과정을 완전히 습득하고 방과후와 주말에도 심화학습을 했다. 윤 교사는 “자격증이 많을수록 취업의 문이 넓고 직장 내 승진기회도 많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시험비용을 벌려고 보성 녹차 밭과 편의점·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종목에 따라 부산·광주·목포로 시험을 보러 다녀야 하는 데다 중장비를 임대해 실습을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경훈(18)군은 “식당 배달 등으로 몸이 피곤할 때마다 홀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다”고 말했다.

자동차과 졸업예정자 40명 중 20여 명은 전문대 진학을 결심했다. 용접 분야 등 22개 자격증을 딴 임국환군은 “여러 자격증을 가진 덕분에 사원모집에 응시할 기회가 많지만 대졸자에 비해 월급이 턱없이 낮은 데다 아직 더 배울 게 많다”고 말했다.

15명은 내년 초 기술병으로 군입대할 예정이다. 정권(18)군은 “기술특기를 살려 군 복무를 하고 나면 대기업체 생산직 사원으로 무난히 취업할 수 있기 때문에 군에 가는 친구가 많다”고 전했다.

천창환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보성실업고=자동차과와 차산업경영과 등 2개과에 전교생이 174명이다. 1951년 보성농고로 개교했다 93년 자동차과를 신설하면서 보성실고로 개명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선정한 고교·대학생 100명의 ‘2008대한민국인재상’ 수상자 중 이 학교 박지현양이 뽑히면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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