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잠 깨어난 일본] 4. 기업 지배구조 '회사 마음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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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에는 사외이사가 한명도 없다. 회사 내부에서 승진한 임원들이 이사회를 구성해 회사를 이끄는 식으로 일본식 기업 지배구조를 고수한다.

"기업 경영을 일본식이네, 미국식이네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도요타식으로 경영을 개선해 나갈 뿐이다. 사외이사를 두지 않아도 그렇게 할 수 있다."(기타가와 해외홍보담당 주사)

후지쓰에는 사외이사가 있는데 미국식은 아니다. 다카시마 전무는 "사외이사를 두되 후지전기 등 관계 회사나 거래 은행에서 영입한다. 교수 등 회사와 관계없는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홈페이지를 통한 회사정보 공개와 증시 공시를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식 기업 지배구조의 특징은 종업원과 고객, 거래은행과 지역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여러 이해 관계자들을 주주와 똑같이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주주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미국식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은 소수다."(가라즈 하지메 도카이대 명예교수)

이와 관련, 일본경제신문이 최근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도쿄증시 상장기업 중 일본식 기업 지배구조를 고수하는 기업과 미국식을 채택한 기업의 경영성과를 비교한 결과 일본식 기업의 수익성이 미국식 기업보다 평균 5배 높다는 것. 일본 게이단렌(經團連)도 사원의 평균 근속연수가 긴 기업일수록 수익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장기불황 속에서 일본에서도 기업 지배구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 '10년 실험'의 결론은 '정답은 없다. 우리는 우리식으로 간다'다. 일본 정부도 한때 사외이사 선임을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결국 기업들이 알아서 선택하도록 했다.

"도요타 등 일본식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기업들도 관료화된 조직을 바꾸면서 미국식 경영기법을 필요에 따라 접목한다. 과거 일본식 경영은 연공서열과 계열 간 거래로 상징되는 장기(長期) '관계주의'였다. 이제는 고용과 거래를 오래 하되 대신 직원과 거래처의 능력을 따지는 장기 '능력주의'로 바뀌고 있다." (후지모토 다카히로 도쿄대 교수)

능력주의가 주류로 진입하면서 젊은층의 직업관도 바뀌고 있다. 종신고용의 전통이 깨지기 시작하자 아예 처음부터 종신고용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신입사원 세명 중 한명이 입사 3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고 있다. 다나카 쓰네유키 게이단렌 노정.기획그룹장은 "일본 근로자도 회사에 충성하기보다 자기 계발에 더 관심을 갖는다"며 "그 결과 현장의 기술혁신과 팀워크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식 위기관리 능력을 더 배우면서 젊은층이 공감하고 따를 새로운 현장 팀워크를 만드는 것이 일본 기업의 숙제"라고 컨설팅 회사인 글로벌 시너지 어소시에츠의 강동우 대표는 지적했다.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양재찬.신혜경 전문기자, 이종태.김광기 기자,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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