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奇行보단 음악성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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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우리는 (침이 아니라)물음표(?)를 뱉은 것이다.”

지난달 15일'MBC인기가요 베스트50'에서 손가락으로 욕설을 하고 카메라에 침을 뱉는 기행을 벌인 그룹'삐삐롱스타킹'에 대해 방송위원회가 5일 1년간 전 지상파 방송출연정지 조치를 내리자 삐삐롱스타킹측이 발표한 항의문의 서두다.

이 항의문에서 삐삐롱스타킹은“침뱉은 행위는 분명 잘못됐지만 우리의 정신 자체는 읽어주길 원한다”며“대중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며 연예인의 유머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여유는 어디까지인가”고 반문했다.

마약흡입이 아니라'시청자모독'으로 가수가 장기출연금지를 당한 일은 국내 가요계에서 전례가 없는 사건이다.이런 사건을 터뜨린 삐삐롱스타킹에 대한 대중의 의견은 크게 엇갈린다.

“억압적 문화환경을 빗댄 저항적 몸짓에 1년 출연정지는 지나친 처사”란 비판이 젊은 가요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반면“관심을 끌어 콘서트관객을 늘리려는 작위적 행동”으로 당연한 벌을 받았다는 비아냥도 만만치 않다.어차피 방송과는 거리를

둔 라이브밴드인 만큼 출연금지조치는 이들의 콘서트표와 음반판매만 도와줄 것이란 해석이다.

논쟁의 시시비비를 떠나 이번 사건은 우리 가요계의 고질적 문제들을 재삼 되짚어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있다.삐삐롱스타킹에'당한'MBC는'인기가요 베스트50'19위까지 올라있던 삐삐롱스타킹의 노래를 사건직후 순위차트에서 아예 빼버렸다.

이는 가요순위는 음반판매량.신청엽서수등 객관적 요소로만 정한다는 방송사 방침과 엄연하게 모순되는 것이다.

반면 사건직후 타워레코드등 소매상 판매순위에는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삐삐롱스타킹의 음반이 새롭게 올랐다.삐삐롱스타킹의'기행'이 갖는 상품성이 구체화된 것이다.

가요계에는'방송출연 횟수와 앨범판매량은 반비례한다'는 속설이 있다.삐삐롱스타킹의 행동이 이 속설을 노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그러니 문제는 역시 음악적 성취여부다.제 아무리 진지한 문화적 의미가 깃들인 기행이라도 가수의 본령인 음악

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상업성을 노린 포장물이란 의심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행에 기울인 노력(?) 만큼 음악적 성숙도 이뤄낼지 삐삐롱스타킹의 모습을 지켜볼 일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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