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위기를기회로>中. 생각을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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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카스 드링크 한 병 마시고 밤새 일해도 끄떡없던 시절은 지났다.지금도 그러다간 하루이틀 버틸 수는 있어도 몸이 왕창 망가진다.한국경제는 이제 20대가 아니다.”

한국경제에 밝은 일본언론인의 말이다.그의 말대로 한국경제는 고성장 일변도로 뜀박질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힘이 달린다고 함부로 부양책을 쓸 수도 없다.'박카스 경제'의 종언이다.

“모두들 고비용.저효율구조를 탓하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를 따져야 한다.진짜 이유는 지난 30여년간의 고도성장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성장속도를 능력에 맞게 낮춰야 한다”(金迪敎한양대교수).감속성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의는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경제학자들은 노동생산성증가율(5% 내외)과 노동력증가율(1.5%미만)의 둔화를 근거로 들고 있다.경제에

무리를 주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6%선으로 낮아졌다는 것이다.결국 경제에 대한 기대치부터 수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의식의 전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유럽나라들이 1백50년에 걸쳐 이룬 부(富)를 한국경제는 30년만에 이뤘다.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의식의 변화가 따르지 못한 것이 문제다”(司空壹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초특급으로 속성부자가 되는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의식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했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벼락부자의 졸부(猝富)근성이 치유돼야 비로소 진짜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소비현상이야말로 졸부경제의 상징이다.미국제 골프채를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연간 2억달러어치의 수입양주를 마시는 나라,1백만원이 넘는 초등학생 옷이 버젓이 팔리는 나라,이런 나라가 불황이라고 죽는 시늉을 하고 있으

니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경제다.

임금욕구는 더 큰 문제다.임금상승은 더 잘살기 위해 땀흘린 당연한 결실이다.많이 오를수록 좋다.그러나 어떠한 국제비교 통계로도 한국의 임금상승추세는 너무 가팔랐다.수준 자체도 더 이상 저임국가가 아니다.분야에 따라서는 영국 같은

선진국보다도 높다.

우리실력에 이런 임금으로 국제경쟁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이런 지적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그러나 정작 자기 급여문제가 거론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적자기업들이 속출하고 부도와 도산이 눈앞에 이어지는데도 임금인상투

쟁과 파업사태는 여전한 실정이다.경제여건이 어떠하든지 '기업은 근로자의 수탈자'라는 종래의 각인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기업과 기업주 스스로의 발상전환이 전제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송병준(宋秉俊)KIET연구위원은“기업

은 정부규제나 근로자탓을 하기 앞서 자체의 비효율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한보사태는 그런 뜻에서 또 한차례 기업이미지에 먹칠을 한 사례다.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다.정부 자신의 생산성은 형편없으면서 민간기업의 생산성 운운하는 것이 먹혀들 리 없다.정부 스스로 서비스산업이라고 발상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된다.국내와 영국에 똑같이 공장을 세워 본 S사의

경험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국내에서는 1백여가지 인.허가서류에 1천여개의 도장을 받았고 공장을 돌리기 전에 지방정부에 기부금까지 냈다.반면 영국에서는 공무원들이 현장으로 달려와 행정처리를 해주고 진입로도 닦아 줬다.“세계화는 규

제를 피해 빨리 해외로 뜨는 것”이라고 단정한 한 대기업 투자관리담당 K부장의 말은 극단적이지만 바로 현실이다.

이제는 스스로 효율이 없거나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정부조직은 없어질 때가 됐다.망하는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정부도,기업도,가계도 시급히 생각을 바꿔 먹지 않으면 나라도 망할 수 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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