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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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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정 로마 초기 귀족들의 휴양지였던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에 덮였다. 17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발굴된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특히 어느 집 현관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 무늬에는 ‘Cave canem’이라고 적혀 있었다. 라틴어로 ‘개조심’이란 뜻이다.

개가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이다. 오늘날까지 발견된 개의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만4000년 전 중동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개와 사람이 함께 생활한 역사가 3만 년도 넘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 벨기에의 한 동굴에서 3만1700년 전의 개 화석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화석으로 추정하는 것과 달리 전 세계 500종이 넘는 견종(犬種)의 DNA를 분석한 학자들은 이들 견종이 모두 1만5000년 전 동아시아에 살았던 늑대의 후손이라고 추정한다. 어미 잃은 새끼 늑대를 데려와 키우면서 길들인 것이 오늘날 개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모든 동물 가운데 맨 처음 가축화된 개는 사람에게 털가죽이나 고기를 제공했고, 사냥감을 추적하거나 짐을 나르는 일을 맡게 됐다. 인간을 위해 희생하기도 했지만 진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개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늑대는 전 세계 10만 마리 수준으로 줄어들어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인간과 함께 살게 된 개는 점점 더 영리해졌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도덕 관념까지 배우게 됐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 학자들은 개들이 불공평한 상황을 인식하고 질투심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앞발을 내미는 것과 같은 재주를 똑같이 부렸는데 옆의 다른 개는 소시지를 받지만 자신은 못 받았을 때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 칠레 산티아고에서 자동차가 질주하는 고속도로에 뛰어들어 차에 치인 동료를 갓길로 끌어낸 개의 CCTV 영상이 공개돼 감동을 주고 있다. 고려시대 전북 임실의 ‘오수의 개’나 조선시대 경북 구미 의구총(義狗塚)의 주인공이 떠오른다. 둘 다 화재로 위험에 처한 주인을 구하기 위해 온몸에 물을 적셔 불을 끄다가 죽은 충견들이다. 올 5월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는 8일간 매몰된 주인 곁을 지켜 결국 주인이 구조되도록 한 개도 있었다.

휴가를 떠날 때 귀찮다고, 병에 걸려 보기 싫다고 쉽게 개를 내버리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모습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