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말 관리 힘있는 총리로- 인식바뀐 김영삼대통령의 총리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고건(高建)명지대총장이 4일 총리로 지명되면 현정권들어 여섯번째 총리다.

그는 공무원사회에서 행정의 달인(達人)이라 불릴 정도며 인재를 키우는데 인색한 우리 사회의 풍토를 견딜만한 엄격한 자기관리를 해왔다.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필요한 임기말 내각의 장악력을 갖춘 적격자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金대통령은 내각의 조정.통제에 대한 확실한 권한을 그에게 줄 것으로 청와대관계자들은 전망한다.한보사태 이전의 총리와는 위상이 다를 것이며,그만큼 金대통령의 국무총리론(論)이 변했다는 것이다.

현정권 들어 황인성(黃寅性).이회창(李會昌).이영덕(李榮德).이홍구(李洪九).이수성(李壽成)총리 다섯명의 역할과 위상은 달랐다.그 차이는 金대통령의 내각에 대한 친정(親政)관리 의지,총리에 대한 신임도,정치.사회적 환경,총리 자신

의 개성에서 비롯됐다.

초대 黃총리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취임초'강한 대통령'을 표방한 金대통령의 머릿속에 총리의 모습은 왜소할 수밖에 없었다.누구에게 흠잡히지 않는 처신에다 호남출신에서 오는 통합성의 장점이 그에게 있었지만 문민 전성기 때의 金대통

령은 거들떠 보지 않았다.

이회창총리의'총리직 실험'은 대통령 권한과 충돌해 실패했다.헌법조항(행정 각부의 통할과 장관해임건의)의 총리역할에 충실하려는 그와 달리 金대통령의 총리관(觀)은 정책결정의 조정자가 아닌 지혜와 판단력을 제공하는 보좌역이었다.그가

물러난 뒤 金대통령은 총리의 역할을 분명히 한정시켰다.

그다음 이영덕총리는 이런 분위기를 파악,자신의 위치를 낮췄다.청와대 관계자들은 이영덕총리의 재임기간을“대통령이 권한을 주지않으면 총리가 의전용일 수밖에 없는 시절”이라고 기억한다.

이홍구총리의 경우 6공(共)때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민정당을 견제하기 위해 노재봉(盧在鳳)총리를 의도적으로 키워줬던 분위기가 풍겼다.金대통령은 그런 이미지관리는 뒷받침해줬지만 총리의 역할은 확장되지 않았다.金대통령의 친정의지가

강한 상황에서 이홍구총리도 모험을 선택하지 않았다.

서울대총장에서 발탁된 이수성총리에 대해 金대통령은 역할공간을 상대적으로 많이 부여했다.그의 기용은 대학교수 우대인사의 절정으로 받아들여졌으며,金대통령의 총리론은 대선후보자 양성의 시험대쪽으로 옮겨지는 듯했다.

이번에 高씨를 총리로 임명할 金대통령의 국정구상은“최고 통치자로서 대북(對北)문제등 안보와 경제살리기에 충실하고 나머지는 총리에게 넘겨주는 것”이라고 청와대 당국자는 설명한다.

그러나 지금의 총리 역할론은 대통령과의 관계설정에 못지않게 권력누수라는 집권세력 공동의 장애물을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변수일 수밖에 없다. 〈박보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