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유래>청파동- 세종때 名臣 '기건'의 아호 '청파' 딴 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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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청파동은 조선 세종때 명신이자 절륜한 지조로 유명한 청파(靑坡) 기건(奇虔)이 이곳에서 오래 산 까닭에 그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상민 출신으로 벼슬이 대사헌까지 오른 그는 청파동집에서 대궐까지 초헌을 타지않은 채 걸어다니는가 하

면 제주목사로 있으면서 해녀들의 노고를 생각해 3년간 전복과 해삼등을 먹지 않았을 정도로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인물이었다.'사육신의 화'가 저질러지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칩거했는데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기전 그의 재능을 아껴 조정에

나오도록 다섯번이나 찾았으나 청맹과니(눈뜬장님)를 자처하며 거절했다.

이에 확인차 한 사람이 바늘로 그의 눈을 찔렀으나 눈하나 깜빡하지 않아 이때부터 '네가 아무리 그래봐야 눈하나 깜빡하지 않는다'는 말이 유행하게 됐다.청파동 1가 큰길 옆에는 고려때부터 역참이 있었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도성과 직

결되는 관문으로 중시돼 동대문밖 노원역과 함께 병조에서 직접 관장했다.이 때문에 이곳에는 역졸이 많이 살아 '청파삼대불문지체(靑坡三代不問至體:삼대를 이곳에 살았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역졸일테니 양반되기는 애초에 틀렸다는 뜻으로 상대

를 깔보고 대접할 때 이르는 말)란 유쾌하지 못한 말도 생겨났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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