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소설가와 대통령과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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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극(詩劇)“소설가와 대통령과 시인”이 중계방송 되던 날 온 국민은 TV 앞에 모여 숨을 죽였다.간간이 새어나오는 한숨 소리만이 정적을 깰뿐 관람 분위기는 침통 일변도였다.이 시극에는 소설가 최인호.박범신,시인 한용운.김소월과 대

통령이 주연했고,김행 중앙일보 전문기자가 조연했다.인상에 남는 몇 장면을 장별(場別)로 옮겨본다.

1.사랑의 장

“그는 독재를 상대로 정말 멋지게 싸웠습니다.특히 박정희 정권 말기에 홀로 국회의사당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습니다.”(한국일보 2월19일자 최인호 기고)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한용운의 시'님의 침묵')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긴 날을 문밖에 서서 들어도/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해 지고 저무도록 귀에 들려요.”(김소월의 시'님의 노래')

“그것은 참으로 고독한 과정이었습니다.어렵고도 험난한 길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것이 나라와 겨레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에서,외로움과 어려움을 보람으로 삼았습니다.”

2.미움의 장

“대통령에 오른 즉시부터 두가지의 꼴불견이 시작되었습니다.그 하나는 그 분을 모시던 가신들의 모습이고…또 하나는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분에게 한 표를 찍은 국민으로서 나는 정말 슬펐습니다.”

“수조원에 이르는 불가사의한 대출에 대해 조금이라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나는 아니야,나는 그 사람 몰라,증거가 있으면 대봐,할뿐입니다.”(동아일보 2월5일자 박범신 기고)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갔습니다.”

“저의 가까이에서 일했던 사람들까지도 부정부패에 연루되었으니 국민 여러분께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신한국을 만들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농락당한 느낌마저 듭니다.만일 제 자식이 이번 일에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할 것입니다.”

3.이별의 장

“그래서 숨가쁜 위급상황의 지금,단상엔 대통령 혼자 남아 있습니다.”

“님은 갔습니다.아아,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김소월의 시'진달래꽃')

“나는 그래도 내가 뽑은 대통령을 믿습니다.아직도 우리가 보장한 1년의 임기가 더 남아있지 않습니까.아직 막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4.에필로그

시극이 끝날 무렵 조연으로 김행 조사전문기자가 등장했다.“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의 사과(謝過)수준에 58.6%가 만족하지 못한다,41.4%가 만족한다고 답변했습니다.” 김성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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