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모션처럼 느릿느릿 무기력한 최홍만 4연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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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종격투기 K-1은 수년 전부터 최홍만(28)과 바다 하리(23·모로코)를 차세대 간판으로 꼽았다. 2005~2007년 3회 연속 월드그랑프리 우승을 독점한 세미 슐트(35·네덜란드)를 최홍만이 힘으로, 하리가 기술로 꺾어주리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최홍만과 하리는 6일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열린 2008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나란히 실망만 잔뜩 안겨줬다. 최홍만은 무기력한 경기로 4연패에 빠졌고, 하리는 반칙 공격으로 실격 처리됐다.

◆거인의 위기

최홍만은 베테랑 파이터 레이 세포(38·뉴질랜드)와의 리저브 매치에서 0-3으로 판정패했다.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고, 40㎝나 작은 세포를 맞아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펴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힘 없고 핼쑥한 얼굴, 자신 없는 동작과 겁 먹은 듯한 표정으로 파이터다운 맛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포의 오른손 훅을 수 차례 허용했고, 필살기였던 무릎치기도 느린 동작 탓에 빗나가기 일쑤였다.

밥 샙(34·미국)이나 슐트를 몰아붙였던 파워는 온데간데없었고, 스피드는 차라리 슬로 비디오였다. 세포의 치고 빠지기 작전에 속수무책이었다. 덩치만으로는 더 이상 K-1 톱클래스 선수와 싸우기 어렵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경기 후 최홍만은 “패배가 유감스럽다. 내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 많이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선수생활 위기를 맞은 셈이다.

◆악동의 위기

하리는 8강에서 우승 후보 피터 아츠(38·네덜란드)를 2라운드 TKO로 꺾었고, 준결승에서는 에롤 짐머만(21·네덜란드)에게 2라운드 역전 KO승을 거둬 기세등등했다.

결승에서는 2003, 2004년 챔피언 레미 본야스키(32·네덜란드)를 만났다. 하리는 지난해 본야스키에게 0-2로 판정패한 뒤 분을 삭이지 못하던 터였다. 이날 하리는 1라운드에서 본야스키의 레프트에 다운을 빼앗기자 잔뜩 흥분했다. 더구나 “상대가 수비로 일관한다”고 못마땅해 했다.

2라운드 들어 거센 공방전 끝에 손으로 본야스키의 다리를 잡아 넘어뜨린 뒤 심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머리를 발로 밟았다. 입식 경기에서는 명백한 반칙 공격이다. 하리는 실격 처리됐고, 본야스키가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다.

하리는 “팬들에게 죄송하다”면서도 “본야스키는 충격을 입지 않았다. 그는 파이터가 아니라 주연배우급”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K-1은 하리에게 출장정지 등 중징계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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