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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몸으로 때우는 시대 지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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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겉은 변했지만 속은 ‘글쎄’다. 기자는 공무원들에게 욕을 실컷 먹었다. 얼마 전 놀고먹는 공무원(공로연수)이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연금을 적게 받게 될까 봐 ‘공무원연금법 개정 반대’ 시위를 한 이들을 꼬집는 기사를 쓴 직후다. “언제까지 박봉에 시달려야 하느냐” “정년퇴직 전 후배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게 공로연수인데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기자의 삐딱한 시각부터 고쳐라” 등. “애환을 헤아리지 못하고 기사를 썼구나”하고 자성도 했다.

그런데 개운치는 않았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나온 공무원들의 이기적인 주장이 떨떠름해서다. 사실 공무원은 경제 한파 영향을 적게 받는다. 월급이 깎이지도 밀리지도 않고, 원칙적으론 60세까지 일할 수도 있다. 급여가 적다지만 민간기업의 90% 수준이다. 그런데 내년 임금을 동결하고 연금법을 바꾸려 하자 불만이다. 행정안전부가 며칠 전 대졸자 30명을 뽑은 ‘행정인턴’에는 900명이 몰렸다. 한 달 수당 100만원짜리 임시직인데도 명문대나 대학원 출신이 수두룩했다. 일당 몇 만원 하는 품을 팔려고 새벽 인력시장에서 ‘슬픈 경쟁’을 하는 가장이나 청년실업자에게 공무원들의 주장은 공허할 뿐이다.

공무원들도 마음이 편치 않단다. 대통령한테는 “일을 스피디하게 못 한다”고 호통을 듣지, 언론은 “‘철밥통’만 지키려 한다”고 비난하지…. 그 심정 이해는 간다. 중앙부처의 한 고위직 간부는 “노무현 정부 때 밀어붙였던 정책을 180도 바꾸려니 너무 힘들다”며 “‘영혼 없는 사람’이란 말까지 들어 속이 시커멓게 탔다”고 했다. 정책이 확 바뀐 부동산·교육·복지·대북 분야의 담당 공무원들은 특히 더 그렇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전면 부정하는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폈다. 우리는 이전 정부와 다르게 가는 ‘ABR(Anything But Roh)’ 정책이 많다. 변화에 둔감한 공무원들이 버거워하는 모습이다.

물론 공무원들도 고생한다. 새해 예산안 때문에 국회에서 발에 쥐가 나도록 대기하고 불려다닌다. 특히 대통령이 1~2월에 하던 정부부처의 새해 업무보고를 이달 중 받겠다고 해 비상이 걸렸다. ‘얼리 버드’와 ‘노 홀리데이’로 심신이 지쳤는데, 연말에 국회 파행과 대통령 업무보고까지 겹쳐 죽을 맛인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일하느냐”다. 몸으로, 시간만 때운다고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 뭔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되짚은 뒤 일관성 있고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변화의 핵심이어야 한다. 미국 44대 대통령 당선인 버락 오바마는 “우리는 변할 수 있다(We can change)”며 개혁을 강조했다. 그렇다. 우리 공무원도 진짜 바뀔 수 있다. ‘친절’은 기본이지 변화도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마음가짐과 일하는 방식에서 시작돼야 한다.

『몰입』의 저자 황농문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일하면(Work hard) 남들보다 2배 이상 잘하기도 힘들지만, 열심히 생각하면(Think hard) 10배, 100배, 1000배까지도 잘할 수 있다”고. 꼭 새겨볼 만한 얘기다. 몸으로만 때우는 일은 그만 하자. 신중하게 열심히 생각하고 생각해 정책을 펼쳐라. 몇 년 뒤 ‘ABMB(Anything But MB)’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