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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케리 당선 땐 이라크서 발 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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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군은 이제 이라크에서 전략적으로 통 안의 다람쥐 같은 상황에 빠졌다. 이라크 주둔 전투병력의 대부분은 저항세력의 공격과 사보타주로부터 보급로를 방어하고 이 나라 전역에 흩어진 부대로 식량과 물자를 공급하는 보급차량의 호위에 투입되고 있다.

점령군의 업무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이라크와 중동 모델 또는 패러다임에 의존한다. 이 모델은 "미국이 계속 점령하는 것이 이라크의 안정에 필수적"이라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 지금은 점령 초기보다 더 불안정하다. 언론에 인용되는 보통 이라크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미국인들이 이라크에 핵무기를 찾으러 왔다. 하지만 무기는 없었다. 그들은 이제 테러리스트와 싸우기 위해 계속 머물겠다고 한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을 데려온 자는 바로 그들이다." "미국인들은 후세인 정권의 고문과 자의적인 체포.감금에서 이라크인들을 보호하러 왔다지만 그들은 지금 이라크에서 후세인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점령은 저항을 낳는다. 이는 당연하며 불가피하다. 이라크는 분명 분파주의적인, 종족적인 불안을 안고 있다. 하지만 점령은 이런 불안을 완화하지 못하며 오히려 또 다른 불안을 낳을 뿐이다.

미국의 순진한 생각에 따르면 이라크인 대부분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원하며 자연스럽게 미국의 편이 될 것이고, 단지 '테러리스트들과 전 정권의 잔당들(도널드 럼즈펠드가 좋아하는 문구)'만이 이에 저항할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지난 1년간의 싸움에서 그런 위해 요소들을 완전히 격리, 격퇴했거나 적어도 억제했어야 옳다. 하지만 그동안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팔루자의 통제권은 저항세력을 포함한 이라크 병력에 실질적으로 넘어갔다. 남부의 다른 시아파 도시들과 바그다드 교외의 사드르 시티도 비슷하다.

이는 민족주의적 저항이다. 저항은 아직까지 대중의 전반적인 지지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이라크인들 중 상당수는 점령군이 떠날 경우 생길 일들을 우려한다. 하지만 이제 이라크엔 점령을 바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점령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이 떠나면 이라크는 수니파.시아파.쿠르드족 간의 충돌로 혼란에 빠지고 이란과 터키까지 지역 전쟁에 말려들 것으로 본다. 물론 내란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라크의 시아파.수니파, 투르크멘인.쿠르드인은 서로의 경계선을 밀고 당기면서 수천년을 함께 살아왔다. 사담 후세인이 시아파와 쿠르드인을 억압한 건 이라크 통합이 아니라 자신의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쿠르드인은 언제나 독립을 원했지만 주변 국가들이 독립된 쿠르드 국가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최근 몇년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쿠르드 민족주의를 고무했다. 하지만 미국이 쿠르드 문제로 고심하는 동맹국 터키를 무시할 리는 없다. 미국이 이라크를 떠나면 쿠르드인은 다시 이전처럼 이라크 아랍인들과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쿠르드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리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부족이나 지역의 강자들을 중심으로 파편화할 수도 있다. 어쨌건 이라크의 민족주의는 계속 남을 것이다.

미국은 늘 이라크인들이 스스로의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진정한 주권 이양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문제는 미 당국이 처음부터 인정했던 것처럼 이라크를 미국의 동맹이자 영원한 전략 기지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 이라크인들이 이를 바라지 않는다면 미국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식민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존 케리 상원의원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벌인 전쟁을 이어받으려고 할까? 그가 베트남전의 교훈에서 좀더 나은 것을 배웠기를 기대할 뿐이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윤혜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