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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록, 캬!’ 굴을 먹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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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모험가 카사노바는 50개, 독일제국의 초대총리였던 비스마르크는 175개, 고대 로마의 위테리아스황제는 1,000개, 프랑스의 대작가인 발자크는 144개. 이 숫자는 그들이 생굴을 한번에 먹었던 개수로 알려져 있다. 1000개를 웃도는 개수의 진실여부는 의심스럽지만 그 만큼 좋아하고 즐겨 먹었다는 뜻일 것이다.

생굴은 보통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나 역시 국민학교 때 비릿하고 물컹물컹한 생굴무침을 맛본 이후론 내내 굴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비릿한 맛이 잊혀지질 않아서 심지어는 밥상에 굴이 오르면 따로 상을 차려놔야 밥이 넘어갈 정도였다. 비위가 그렇게 약한 편도 아닌데 이런 유난까지 떨었던 걸 보면 그 맛의 충격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위에서 ‘굴 먹으면 예뻐 진다.’ ‘굴은 바다의 우유야.’라는 말로 유혹했지만 내내 그렇게 난 굴을 피해 다녔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다시 굴을 좋아하게 됐다. 친구와 맥주한잔 하러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던 중국식 주점에서 친구가 주문한 굴탕면 덕분이었다. 주방 안에 특급 주방장이라도 숨어 있었던 걸까?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그 굴탕면은 내 혀끝이 저장해둔 ‘굴’의 기억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단시간에 센 불에서 볶아낸 특유의 향이 그대로 살아있었고 굴에서 뿜어낸 뽀얀 육즙과 적당히 익어서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살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맛있는 맛’ 중의 하나가 되었다.

굴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준 이 사건은 바로 ‘생굴 도전’을 감행케 했다. 내가 다시 굴을 받아들인 것은 ‘익힌 굴’을 먹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굴을 먹어봐야 진정한 ‘굴맛’을 봤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날 것을 먹지 않았던 서양에서도 굴 만큼은 날 것으로 즐긴 걸 보면 그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싶었다. 초고추장 듬뿍 찍어 입안에 넣어본다. 새콤달콤 초고추장 덕에 맛은 있지만 온전한 굴 맛은 아닌 것 같다. 이번엔 프랑스식으로 레몬을 쭉쭉 짜 넣어 ‘호로록’ 마시듯 입어 넣고 오물오물 먹어봤다. 호로록, 캬, 호로록, 캬… 어? 맛있네. 짭쪼롬한 바다내음과 싱그런 레몬, 그리고 생굴의 생기 있는 감칠맛. 달다. 아, 이 맛에 다들 굴을 좋아하는구나.

자연의 맛을 느꼈으니 이번엔 응용편. 생굴에 튀김 옷을 입혀 180도의 기름에서 딱 30초만 튀긴다. 튀김 옷이 노릇하게 익으면 바로 건져낼 것. 굴이 너무 익어버리면 질겨지고 육즙을 잃는다. 바삭한 튀김 옷을 ‘파삭’ 씹으면 알알이 부서지는 육즙의 파도. 이 뽀얀 육즙을 보면 굴을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고 부르는 것이 순전히 칼슘과 미네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아연(Zn)이 풍부해서 굴을 강정식품으로만 부각시키기도 하는데 굴은 미식가들에게도 좋은 음식이다. 미식가들에겐 생명과도 같은 미각과 후각의 기능에 아연이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또 비타민 A와 C, D 그리고 B군이 다양하게 들어 있어 하루에 5개의 굴을 먹으면 비타민과 무기질의 하루 권장량을 대부분 모두 섭취할 수 있다.

옛말에 ‘보리가 패면 굴을 먹지 말라’했다. 일본에선 ‘벚꽃이 지면 굴을 먹지 말라’하고 서양에서는 ‘알파벳에 R자가 들어가지 않는 달(5~8월)엔 굴을 먹지 말라.’고 한다. 비브리오균에 감염된 굴을 먹고 비브리오장염이나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릴지도 모를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보리는 이제 막 파릇파릇한 새싹이 되었고 벚꽃은 찬 겨울을 나려고 겨울눈을 달았다. 또 12월엔(December) 반갑게도 ‘R’자가 있으니, 생굴을 먹자. 제철 맞은 굴이 오동통한 살에 육즙을 가득 품고 우리를 기다린다. 이번 주말, 시간이 허락하면 충남 보령 천북에서 열리는 굴 축제에 한번 가보는 것도 좋겠다.

김은아 칼럼니스트 eunahsty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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