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외국인’ 김효범 태극마크를 어찌하오리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미소를 짓던 김효범(25·모비스·사진)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3일 KT&G와의 경기가 벌어진 안양체육관에서 “국가대표에 발탁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고서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팀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고 답을 피했다. 그는 이어 “대표가 될 기량도 안 된다”고 말했다.

실력은 충분하고도 넘친다. 그는 4일 현재 평균 15.71득점으로 국내 선수 중 득점 1위다. 1m95㎝의 키에 슬램덩크를 자유자재로 할 정도로 탄력도 좋다.

태극마크를 달면 영광이겠지만 김효범에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효범은 어릴 적 캐나다로 가서 그곳의 시민권을 받았다. 국가대표가 되려면 한국 국적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러면 병역의무를 져야 한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는 등의 성과를 내면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겠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가 완전한 외국인이라면 국가대표를 거부해도 큰 상관이 없다. 그러나 한국프로농구연맹(KBL)에서 그는 한국 선수로 대우받고 있다. 그를 위해 KBL은 ‘부모가 모두 한국 출신이면 외국 국적이라도 국내 선수로 본다’는 조항까지 만들었다. 그는 KBL의 외국 선수 진입 장벽을 피해 국내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한국 농구에 왔다. 결과적으로 김효범은 검은 머리를 가진 외국인인 셈이다.  

김남기 대표팀 감독은 시즌 초반 “김효범의 실력이 늘어 필요한 선수가 됐다. 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만약 김효범이 귀화를 거부한다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비난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다른 선수들은 “왜 김효범만 군대 문제를 피해 가느냐. 불공평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가수 유승준이 미국으로 돌아간 것과 비슷한 경우다”라는 소리도 나온다. 김 감독은 사태가 심각하자 최근엔 “국적 문제도 있어 반드시 필요한 선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B급 선수로 물러나 있으면 소나기는 피해가겠지만 그러기엔 그의 승부욕이 너무 강하다. 그는 한국 무대 진입을 타진하던 2004년 “한국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 그래서 지난 2003년 캐나다의 유니버시아드 대표 요청도 거부했다. 난 한국인이고 한국인으로서 세계 무대에 나서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안양=성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