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중학생의 튀는 패션.고교생들과도 큰 세대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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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회는 10대들을 인격체 대신 거대한 *소비 주체로만 대우하고있다. 그래서 돈이 생기면 발랄하고 돈이 떨어지면 우울증에 빠진다. 학업과 돈벌이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열셋에서 열여덟까지,같은 10대라도 속된 말로.중딩'(중학생)과.고딩'(고교생)의 문화는 많이 다르다.10대문화의 중심에자리잡은 패션과 대중가요를 두고도 중학생을 바라보는 고교생의 시선은 싸늘하기 짝이 없다.
중학생들이 H.O.T의 거인장갑을 기를 쓰고 사러다니는데 고교생들은 거저 줘도 안갖는다고 말한다.이들 눈엔 빨.노.파 원색의 옷차림이나 무스로 찰싹 붙인 단발머리와 꽃핀이 견딜수 없이 유치하다.고교생들이 원하는 것은 세련된 차림이 다.여학생들은 롱부츠에 쫄바지,높은 굽에 미니스커트처럼 대학생 숙녀쯤으로보일법한 차림을 선호한다.남학생들의 준(準)정장차림도 선호품목이다.같은 힙합바지를 입더라도 자기네 표현으로는.유치하지 않고한결 예쁘게' 입는다.
물론 중학생이라고 힙합패션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신촌에서 만난 여중생들은 힙합 통바지차림을.양아치'패션으로,통좁은.짝바지'에 정장풍 재킷차림은.영계'패션으로 부른다.참,짝바지도 두가지가 있다.영계패션 말고 소위 모범생들을 일컫 는.범생이'패션말이다.“범생이?”신촌서 만난 여중생들이 합창으로 반응한다.
“짜-증-나!”노래방만 가도“이,이런 데를 어,어떻게! 가도 괜찮니”한다는 것이다..터프가이'가“통좁은 청바지,라운드 티셔츠,농구화”라고 범생이 패션을 요약하 자 여중생들은 조롱이라도하듯 웃음을 터뜨린다.지금 고1들이 중학생때는 범생이가 아니더라도 농구화가 최고 인기품목이었는데,요즘은 고교생들도 운동화보다 단화를 선호한다.좀 튄다싶은 여학생들은 굽있는 구두,남학생들은 자기발보다 커보이는 볼록구두를 신는다.
패션만 다른 것이 아니다.고교생으로 갈수록 H.O.T와 영턱스클럽의 *인기에 대한 반감이 커진다.“표절가수,립싱크가수”라는것이다.“이들이 누리는 인기가 어른들이 10대를 바보로 여기게만든다”는 냉혹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학년이 높아지는 만큼 좋아하는 가요를 비롯,대중문화취향은 다원화된다.록이나 헤비메탈같은 특정 장르에 몰입하기도 하고 영화 매니어를 자처하기도 한다.신촌여중생들만 보면 문학은 물론이고 영화도 미래가 밝지않다.흥미 위주의 할리우드 대작영화도 이네들은 별 관심이 없다.반면.빨간딱지(미성년자관람불가)'라면.애마부인'같은 고전에서.어쭈구리'같은 신작까지 섭렵 폭이 넓다.
기성세대는 요즘 텔레비전 쇼나 가요가 너무 10대 위주라고 투덜대지만 관심정도를 비교하면 10대들이 주도권을 쥐는 것이 당연하다.신촌여중생들의 경우 CD는커녕.길보드 테이프'도 잘 사지 않는다.그럴 돈이 없다는 것이다.염색도 돈되 면 5천원짜리 염색약,안되면 5백원짜리 과산화수소로 탈색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이다.미장원 갈 돈이 있으면 차라리 노는데 쓴다.노래방에서 4천번대 신곡을 줄줄이 꿰는 이 아이들의 솜씨는 순전히 텔레비전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보 면서 익힌 것이다.이네들의 댄스가요 편식을 나무랄망정 매니어 수준의 열정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결 세련되고 다원화되기는 했어도 입시준비 분량이 늘어나는 고교생 문화는 중학생보다 에너지가 떨어진다.시험이 끝나도 밖으로 놀러갈 궁리보다 집에서 모자란 잠을 자거나 비디오를 빌려다보는데 그친다.논술시험이 강화된 요즘은 고전에서 최신 시사문제까지 논리정연하게 자기 주장을 펴는.슈퍼고등학생'들도 가끔 눈에 띄지만 일상은 크게 다를 수 없다.“매일 매일 똑같은 날이너무 빨리 지나가요.수업-보충수업-학원-자고-수업-보충수업-학원-자고… 너무 지겨워요.”한 고 교생의 말이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교실은.범생이'와.날라리'를 *비롯,몇개의그룹으로 나뉜다.아이들은 그중에 날라리도 아니면서 놀고싶어 안달이 난 축들을 얕잡아.좆삐리(또는 좆밥)'라고 부른다.그러나현실상 대부분 아이들은 이 범주에 머무를 수밖 에 없다.요즘 10대들의 공통적인 욕망을 한 고교생은 이렇게 표현한다.“놀기도 잘 놀면서 공부도.짱'인 애들 있잖아요,선생님한테도 잘 개기고,선생님도 감히 못건드리는.진짜 날라리'요.근데 요즘은 그런 날라리가 정말 드물어요.” *도움말주신분들:KBS-1TV.
신세대보고-어른들은 몰라요'제작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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