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황장엽 서울行 총력외교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에 망명을 요청한 황장엽(黃長燁)북한 노동당비서와 관련,최우선 과제는 얼마나 원만히 빠르고 안전하게 중국을 떠나도록 하느냐다.통상적으로 정치적 망명은 국제규범에 따라 본인의사가 존중되는게 원칙이지만 황장엽의 경우는 상황이 그렇 게 단순하지않다.남북한과 중국의 정치적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외교교섭에 나서고 있지만 이번망명사건이 매듭지어지기까지는 상당기간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같은 전망은 북한-중국의 특수한 관계와 정치적 망명에 대한중국정부의 정책에 근거하고 있다.그동안 한.중 수뇌가 몇차례 오가고 경제관계가 심화되는 등 서로 우호를 확인하고는 있지만 북한과 중국 사이에도 못지 않은 전통적 우호관계 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중국에 북한의 행태에 골치아픈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념을 같이하면서 지켜주어야 할 사회주의국가이고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인방(隣邦)이다.
또 중국은 자국내 반(反)체제활동과 관련해 정치적 망명에는 오랫동안 거부감을 보여왔다.중국이 정치적 망명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활동을 사실상 인정하지않아온 데서도 그러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이러 한 중국의 입장을 알고 있는 북한은 황장엽의 망명을 납치라고 주장하면서“중대한 사건으로 간주하고 응당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며“중국에서도 이와 관련한 해당한 조치를 취해주리라고 기대한다”고 중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중국입장에서 는 큰 골칫덩이를 떠맡게된 셈이다.
황장엽비서의 망명신청이 처리될 수 있는 방안은 몇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첫번째는 물론 黃씨의 희망대로 서울로 직접 오도록 중국정부가 허용하는 방안이다.두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은중국이 남북한 모두의 체면을 세우면서 해결하는 방안이다.황장엽이 직접 서울로 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제3국으로의 망명주선이다.세번째가 황장엽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고,네번째로는 황장엽이 우리 공관에 머무르게 한채 무한정 미루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으로 보아 우리가 희망하는 것처럼 황장엽비서가 당장 서울로 오도록 할지는 의문이다.그렇다고 북한이 희망하는 것처럼 황장엽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낼 가능성이 크다고는 볼 수 없다.그럴 경우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판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 중국의 국가적 이미지도 크게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黃비서가 당장 서울에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제3국으로의 출국이라는 차선책(次善策)도 염두에 둬야 한다.물론 모두 중국으로선 내키지 않는 일이다.따라서 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한 직접적 인 교섭과 아울러 미국과 일본을 비롯,국제사회와 유엔의 관계기관 등에도 협조를 구하는 등 외교역량을 쏟아야 한다.
중국이 난처하긴 하겠지만 우리로선 중국이 국제규범에 반하는 몰상식한 행동을 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정치적 망명자처리에 대한 국제적 규범과 관례를 따라주기를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