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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위제 없앤 게 문제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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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브레턴우즈 체제 자체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1944년 회의에 앞서 2년 반에 걸친 준비 협상들이 있었다. 그에 비해 최근의 G20 정상회의는 사실상 아무런 사전 준비 작업도 없이 열렸다. 어쨌든 현 시점에서 세 가지 과제의 해결이 중요하다. 첫째, 세계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시스템이 되살아나면 이를 감독할 새로운 규정을 제정하는 것이 둘째다. 셋째, 실물 경제활동에 집중하면서 더 이상의 경기후퇴를 막고, 최종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금융에 덜 의존적이 되도록 시스템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 투자, 장부상의 소득이 아닌 생산적인 활동이 장려돼야 한다.

첫째 과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그렇지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은행의 대출 능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만으론 충분치 않다. 만일 경제가 다시 회복된다면 은행은 대출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경기 후퇴는 기업인들이 투자를 줄이도록 만들고 있다. 둘째 과제 해결 전망도 불투명하다. 금융시장을 어떻게 재조정할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다. 셋째 과제 해결의 핵심은 실물경제 상황이 어떤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다. 아이슬란드나 헝가리 같은 국가들은 명백히 파산했다. 덴마크·스페인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단지 금융위기에 직면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곪아 와서 해결이 쉽지 않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와 금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린 것이 현 위기의 근원이란 사실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그때까지 미국이 금본위제를 유지하겠다고 한 약속은 브레턴우즈 체제의 핵심인 전 세계적 고정환율제의 기초가 됐다. 금본위제가 유지된 27년 동안 국제교역은 크게 성장했으며, 대규모 금융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금본위제 폐지 이후 국제 금융시스템은 매우 불안정해졌다. 변동환율제는 가격 변동으로부터 국제교역을 보호할 수 있는 상품 개발의 필요성을 높였다. 이에 따라 옵션과 신용 거래, 다양한 파생상품이 생겨났다. 이는 금융의 기술적 진보로 여겨졌다. 금융상품 시장은 지난 30여 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 순식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자본주의시스템은 약화됐다. 주식 보유자들은 연기금·투자펀드·헤지펀드 등을 통해 잘 조직되었고, 선진국 기업에서 세력을 얻어갔다.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이 그들의 압력에 영향을 받게 됐다. 실질 임금은 오르지 않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불안정한 고용 상태로 내몰렸다. 결과적으로 소비는 위축됐으며, 고용 불안정은 커졌고 실업 감소 추세도 멈췄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의 중·상류층은 생산적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대신 점점 더 자본 수익에 매달리게 됐다. 이것이 불평등을 확대하고, 경제에 대한 금융의 장악력을 강화했다. 실물경제가 외부 충격에 대처하는 능력은 치명적으로 약화됐다. 오늘날의 위기는 신용만이 동력이 되는 경제성장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교만한 금융이 경제를 옭아맨 매듭을 푸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G20 정상회의는 이러한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논의에 물꼬를 튼 것이다.  

미셸 로카르 전 프랑스 총리 현 유럽의회 의원
정리=유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