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펀드’ 부처 엇박자로 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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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돈줄이 마른 건설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하겠다던 미분양 펀드가 꾸려지지도 못하고 40일 넘게 표류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국토해양부의 엇박자 때문이다.

미분양 펀드란 건설회사가 갖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는 민간 펀드다. 정부가 10월 21일 건설사 유동성 지원 대책의 하나로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 펀드 출범 자체가 불투명하다.

이 정책을 맡고 있는 국토해양부와 금융위원회는 빨리 미분양 펀드를 조성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세부 방안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분양 아파트를 펀드에 팔아 생긴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놓고 두 부처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펀드 조성 방안에 따르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많은 은행 같은 금융회사가 미분양 펀드에 투자하되 건설사가 받은 매각대금은 금융권 대출을 갚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경기침체와 금융시장 불안으로 미분양 펀드에 투자할 사람이 거의 없어 이런 방식으로 금융회사 돈으로 펀드를 조성해야 한다는 게 금융위의 판단이다. 은행은 펀드에 투자하는 대신 건설회사에 빌려준 돈을 받기 때문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추가 대출 여력도 커진다. 미분양 아파트를 팔게 된 건설사는 대출 원리금 연체 등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 위험에서 벗어난다.

금융위 관계자는 “미분양 펀드 하나만으로 은행과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미분양 펀드가 성공하면 연기금 등 일반 투자자들도 미분양 펀드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올부동산자산운용의 정대환 실장은 “금융권이 PF 대출 총액(약 90조원)의 10%만 미분양 펀드에 투자하면 대출상환을 통해 PF 대출이 10% 줄고, 건설회사의 미분양은 30%가 해소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는 생각이 다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건 없다”며 "다만 미분양 아파트를 판 돈을 금융권 대출 상환용으로 사용하면 건설사의 부도 위험 때문에 분양보증을 선 대한주택보증의 부실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주택보증의 부실이 커지면 최악의 경우 건설사가 쓰러졌을 때 아파트 완공을 보증할 수 없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주택보증 관계자는 “우리가 매각대금을 받아 일괄 관리하면서 향후 건설사의 사업비가 부족해지면 그때마다 자금을 공급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 안은 금융회사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미분양 아파트를 판 돈을 대한주택보증에 줘 건설회사가 사업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게 건설경기를 살리는 데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양측이 맞서는 가운데 미분양 아파트는 더 쌓이고 있다. 9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가 지난해 말보다 40% 늘었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관계자는 “하루라도 빨리 미분양 펀드를 출범시키는 게 건설사는 물론 금융회사에도 도움이 되는데 두 부처가 맞서면서 시간만 흘러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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