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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북유럽의 숲이 빚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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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12면

1, 2 Kai Christiansen이 디자인한 책장과 책상, 사이드 테이블. 책상 뒤에 책장이 있는 것도 재미있고 세 개의 테이블이 차례로 겹쳐져 있다 원할 때 길게 늘여 쓸 수 있는 기능성도 놀랍다. 일체형이어서 이동도 손쉽고 각각 분리해 사용할 수도 있다 3 길이 조절이 가능한 테이블. 아이들에게는 마법 같고, 어른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활용도가 높은 것이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가구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4 간단하면서도 기능적인 화장대 5 3단으로 각각 분리된 거울은 접었다 폈다, 각도도 조절할 수 있어 편리하다 6 디자이너 Kurt Ostervig의 책장 겸 수납장. 이 제품의 진면목은 옆에서 봐야 제대로다. ∧자 다리가 벌어진 각도를 따라 수납장의 문도 사선으로 미끄러지고 있다7 단순해 보이지만 문의 디테일이 섬세하고, 다리의 생김도 독특한 수납장 8 티크 소재의 6단 서랍장. 무명 디자이너의 손길이 단정하면서도 무게감 있게 느껴진다

지난 10월 청담동에 개장한 ‘모벨 랩(Mobel Lab)’의 쇼룸에서는 192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제작된 오리지널 빈티지 제품을 판매한다.
두 달에 한 번씩 덴마크와 스웨덴에 가서 직접 수백 점의 가구를 선택하고 들여오는 모벨 랩 대표 딘김 이사가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두 가지다. “빈티지란 무엇인가?” “스칸디나비안 스타일 가구란 또 뭔가?”

부모님 세대부터 ‘골동품’ 개념에 익숙한 우리는 ‘빈티지’라고 하면 무조건 오래되고 값이 비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지금도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1분에 수십 개씩 쏟아지는 ‘신상’들에 비하면 빈티지의 나이는 당연히 많다. 그런데 ‘앤티크’보다는 젊다. 통상적으로 앤티크는 제작된 지 100년 이상 된 제품을, 빈티지는 30~100년 정도 사이에 제작된 것을 말한다.

굳이 나이를 비교해 가며 설명한 이유는 빈티지로 분류되는 제품들의 나이가 아직은 곱게 모셔 두고 관상용으로만 즐길 종류는 아니라는 얘기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져 누군가 써 왔고, 앞으로도 충분히 누군가 사용하고 또 다음 세대에 물려줄 만큼 튼튼하고 매력적이라는 게 바로 빈티지 제품의 특징이다.

“여기 있는 가구들은 거의 50년씩은 된 건데 이런 생활가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우리의 현재 가치관으로는 흥미롭죠. 지금의 기성 가구들은 몇 년 쓰면 낡거나 부서져 버리고 새것을 사야 하는데, 빈티지 가구는 세월이 지나도 멀쩡하고 오히려 더 멋있어지죠.” 북유럽의 유명한 디자이너 한스 웨그너나 핀 율이 디자인한 가구를 보면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9 심플한 크림색 벽과 원목 바닥, 팝아트 작품이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가구와 어울린 모벨 랩의 쇼룸. 사진에서 보이는 두 개의 수납장은 로즈우드 소재로 무명 디자이너에 의해 1960년대 만들어진 제품이다

당시 ‘최고의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기능, 장인의 솜씨, 좋은 재질이 균형 있게 녹아 있음을 의미한다. 의자 하나, 테이블 하나를 만들더라도 어떡하면 좁은 공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쓰일까, 사람이 사용했을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이것이 디자이너가 고민한 중요한 문제였고, 이 두 가지 컨셉트에 가장 충실했던 게 바로 스칸디나비안 가구다.

가구에서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은 덴마크·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에서 제작된 모던한 디자인과 실용성을 겸비한 제품을 통칭한다. 디자인은 멋지지만 쓰임새는 많지 않은 가구, 실용적이기는 하나 외형적으로 감각이 떨어지는 가구는 당연히 해당되지 않는다. 스칸디나비안 가구의 또 다른 특징은 북유럽이 가진 멋진 자산인 나무를 사랑한 제품이 많다는 점이다.

모던한 디자인의 정수라고 칭송되는 북유럽 가구의 대표작은 대부분 1950~60년대 제작됐고, 이때 가죽과 패브릭은 물론 다양한 신소재가 자유자재로 가구에 응용됐던 것도 특징이다. 아르네 야콥센의 에그 체어와 스완 체어는 가죽과 쇠로만 만들어졌다. 하지만 핀 율처럼 많은 디자이너가 나무의 결과 무늬를 사랑했고, 지금은 전 세계인이 사랑하고 있다.

모벨 랩의 딘김 이사가 빈티지 가구를 사랑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손때’ 묻을수록 사랑스러워지는 느낌. “형태보다 재질에서 우러나오는 멋은 새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죠. 세월이 지나 멋있게 변한 가죽과 나무 느낌을 어떻게 흉내 낼 수 있겠어요.”

단지 지금까지 소개된 많은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가구들이 상당한 고가였고, 그래서 집에 ‘모셔 두는’ 장식품으로 먼저 인식되는 것도 맞다. 당대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 위주로 소개됐기 때문이다.

모벨 랩이 포인트를 맞춘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가구라고 하면 작품성이 뛰어나고 비싸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등식을 바꾸자. ‘작품’은 가구를 대하는 시선이나 가격 면에서 당연히 선입견을 갖게 하고 부담을 준다. 그래서 모벨 랩은 디자이너의 ‘작품’보다는 ‘생활가구’로서의 빈티지 가구 개념에 충실하겠다는 생각이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희소 작품도 물론 선보이지만 그보다는 스웨덴의 어느 가정집에서 찾아낸 식탁처럼 합리적인 가격대로 견고하며 실용적인 무명 디자이너들의 빈티지 가구를 대거 선보이겠다는 게 모벨 랩의 계획. “당시의 스칸디나비안 가구는 가구 디자이너와 가구 제작자를 명백히 구분해 유명 디자이너라고 할지라도 제작에서 의자 전문 제작자, 테이블 전문 제작자 등 전문화된 제작자에게 의뢰하는 가구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의 작품 중에서도 내구성과 기능성 면에서 탁월한 가구가 많죠.”

모벨 랩 컬렉션은 이런 숨은 진주를 찾아낸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모벨 랩 매장에서 만날 수 있는 가구들은 로즈우드·티크 등의 나뭇결에서 드러나는 자연미와 당시 가구 디자인에서 최우선으로 여겼던 기능성과 실용성이 잘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형 테이블, 날개를 펼쳐 넓이와 길이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식탁, 거울이 숨어 있는 화장대 등 외면적인 디자인은 단순한데 그 속에 마법처럼 놀라운 기능과 활용성을 숨겨 둔 제품들이 그 예다. 가격대는 25만원대부터.

모벨 랩은 현재 청담동 쇼룸 외에 성북동에 웨어하우스 형식의 매장을 두고 있다. 청담동 쇼룸은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가구에 처음으로 호기심을 갖고 방문하는 고객들을 위해 의자·테이블·캐비닛 등의 단품 아이템들로 주로 구성됐다. 성북동에서는 인테리어 전문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전문인들이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제품을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템들을 운영하고 있다. 문의 모벨 랩 청담점 02-512-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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