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중국, 개혁·개방 30년 … 소설에 비친 농촌의 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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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農民帝國(농민제국)
장쯔룽 지음, 베이징(2008년), 660쪽(58위안)

“나는 농민이다.”

중국에선 ‘농민’이란 단어에는 더이상 자부심이 담겨 있지 않다. 중국인이 “그 친구 농민이야”라고 말할 때, 이 말엔 상대에 대한 동정과 경멸의 뉘앙스까지 담긴다. 전체 13억 인구 중 호구(戶口:주민등록) 기준으로 9억 명을 넘는 중국의 농민들은 ‘농민의 나라면서도 농민의 나라가 아닌’ 중국이란 모순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30년 개혁·개방이다. 도시 주민에 비해 농민은 가난하다. 교육받을 기회가 없다 보니 사회적 경쟁에서 뒤처졌다.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는 3.4배를 넘어섰고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나온 농민, 즉 농민공(農民工)은 ‘2등 국민’으로 취급당한다. 때문에 농민들은 지금도 도시로 끝없이 몰려간다. 목적은 단 하나, 돈 버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거기서 황제가 되는 꿈을 꾼다. 그런 농민공이 2억 명을 넘는다.

중국에서 최근 출간된 장편소설『농민제국(農民帝國)』은 개혁·개방 30년간 중국 땅에서 농민들이 겪어온 욕망과 좌절을 거울처럼 비쳐준다. 중국어로 50만 자(66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저자 장쯔룽(蔣子龍·67)은 1997년에 펜을 들어 11년만인 올 7월에야 탈고했다.

소설의 무대는 궈자춘(郭家村)이라는 농촌 마을이다. 작가는 주인공 궈춘셴(郭存先)과 50여 명의 농민을 등장시켜 개혁·개방 30년 동안 농민들이 겪은 현기증 나는 변화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공산당 정부의 정책 변화가 어떻게 농민들의 생활과 의식을 바꿔왔는가를 그려준다.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를 내건 사회주의식 인민공사(人民公社)가 해체되면서 이 마을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정부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을 내세워 “누구든지 먼저 부자가 되라”고 부추긴다. 자본주의적 죄악으로 여겼던 돈벌이가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된다. 농민들은 경쟁적으로 부업을 찾고 돈벌이에 혈안이 된다. 향진(鄕鎭)기업을 일구면서 농민들은 하룻밤 새 농민기업가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짧은 기간에 상상도 못했던 부를 축적한다.

어느덧 궈춘셴은 경찰도 법도 맘대로 할 수 있는 농민 제국을 구축한다. 그러나 궈춘셴은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감옥으로 가고 그의 제국도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개혁·개방 초기 중국의 대표적인 농촌 성공 모델로 선전되다 갑자기 몰락한 톈진(天津) 다추좡(大邱莊)의 성공과 몰락에서 소재를 따온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그러나 작가는 “수많은 중국 농촌을 답사하고 자료를 조사한 뒤 만든 가상의 공간을 통해 중국 농촌의 현실을 반영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작가는 “궈춘셴과 궈자춘의 몰락은 우연이 아니라 중국 농민의 필연”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단숨에 부자가 되려는 꿈을 꾸는 농민들이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파멸하게 돼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장쯔룽(蔣子龍)=허베이(河北) 창저우(滄州) 출생. 해군으로 복무한 뒤 톈진의 기계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이런 경험을 기초로 『차오(喬) 공장장 취임기』노동자를 소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저서로 중편 『빨주노초파남보(赤橙黃綠靑藍紫)』도 있다. 톈진시 작가협회 회장이자 중국 작가협회 부주석. 자신을 농민이라고 말할 정도로 농촌에 애착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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