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위석칼럼>'위대했던' 丙子年 겨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언젠가 우리는 병자년 겨울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했다고 회고하게될지도 모른다.잇따라 터진 두개의 사건이 준 위대한 반면(反面)교훈 때문이다.하나는 노동법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한보사건이다. 노동법사건에서는 국회 입법 처리과정의 반(反)민주주의가 안그랬더라면 훌륭한 것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를 법 내용 자체를쓸 수 없는 것으로 파괴하고 말았다.한보사건에서는 권력이 은행대출을 주물렀음이 틀림없다고 보이는 반시장주의가 안 그래도 비실거리고 있는 한국 경제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이 두사건으로말미암아 한국의 정치와 경제는 한참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정축(丁丑)년은 실감(實感)의 힘에 의한 진정한 민주화와 시장경제 화가 추진되지 않을 수 없는해가 됐으면 싶다. 김영삼(金泳三)정부 리더십의 기치(旗幟)는.개혁'이었고 개혁의 다른 이름은 세계화였다.오늘날 세계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세계화는 결코 바깥을 향해 나라의 대문을 여는 것 따위가 아니다.황차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아래서는 어떤 나라고 대문은 이미 열려 있다. 세계화는 바깥과는 차라리 아무 관계도 없다고 해야 하리라.우리 자신의 안을 민주주의로 만들고 시장경제로 만들면 그것이 세계화다.이런 세계화를 이루면 WTO체제는 국내에 압력으로 작용하는 대신 국외의 기회를 국내에 제공하게 된다. 반민주주의와 반시장경제는 곧 반세계화다.따라서 반개혁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노동법과 한보 이 두사건으로 증명된 개혁의 실패는 정부만의 실패는 아니었다.한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산으로서의 완강한 반민주주의와 반시장경제가 이 실패의 근원에 있었다고 본다. 먼저 반시장경제부터 그 내용을 보자.두가지로 이루어진다.하나는 기업 내부의 관료화 성향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이 시장에 간섭해 시장이 평가하는 위험과 가격을 도외시한 채비가격적으로 자원을 배정하는 것이다.이 두가지가 초래한 전형적결과가 이번 한보사건이다.정부 산업정책이 사업을 허가하고 은행은 이 결과에 따라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다.이렇게 하면 사업 망하고 은행 망한다.은행이 망한다는 것은 예금주가 망하게 된다는 뜻이다. 여태까지는 한국 사람에게 어떤 조직이라도 관료화시키려는 성향이 있었던 것같다.기업 뿐만 아니라 친목단체마저 관료화시키려 든다.전형적으로 관료화돼 있는 기업이 은행이다.본래 사기업으로출발한 기업들도 커지고 안정되면 관료적 의사결정 체제로 돼간다.이런 경향 속에서 노동조합도 관료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관료화된 비시장주의 조직에서는 의사결정의 준거에서 경제적 요소가 배제되고 만다. 일부에서는 금융기업의 실력을 외국 금융기관과 경쟁할 수 있도록 길러놓은 다음에 금융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너무나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이번 한보사건에서 보는 것같이 국내 은행 스스로 멸망하는 것을 개방 지연으로 막을 수 는 없다.금융기관 합병이나 영업영역 칸막이 철폐로도 이런 자멸은 막지 못한다.오로지 내부와 외부 두 관료주의를 차단하고 금융기관 경영을 시장경제화하는 수밖에 없다. 기업에 미치는 정치와 행정의 비시장적 간섭을 타파하는 길은 통치기구를 철저하게 민주화시키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지난해 12월26일 오전6시 비밀리에 모여 노동법을 국회에서통과시킨 이 비민주적 행위에 참가한 1백54명의 여당 국회의원가운데는 자타가 인정하는 민주주의 정치가가 수두룩하다. 지금 그 사람들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창피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이 창피함에서 에너지를 얻어 그들이 리더가 돼 자기네 정당의 운영을 민주화시키는 혁명을 일으키는 것만이 온 나라에 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키는 방법일 것 같다.그리고병자년의 화(禍)를 고쳐 정축년의 복(福)을 만드는 위대한 길일 것이다. (논설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