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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지 최대 흑자에도 환율은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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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외환시장에 두 가지 호재가 동시에 터져 나왔지만 시장 반응은 예상보다 무덤덤하다. 적자를 이어 가던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규모의 흑자로 급반전됐다. 지난달 말 체결된 한·미 통화 스와프를 통해서도 ‘달러 수혈’이 이뤄질 예정이다. 둘 다 국내에 달러 공급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1원 내리는 데 그쳤다. 한국씨티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두 가지 모두 밝은 면과 함께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면서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자본수지가 사상 최대의 순유출을 기록했다는 점은 걱정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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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이 안정되려면 기본적으로는 시중의 달러 가뭄이 풀려야 한다. 경상수지 흑자가 나면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 국내로 들어오는 달러는 많아진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은 그간 빌린 외화를 갚느라 나라 밖으로 대거 달러를 내보내고 있다. 지난달 자본수지가 255억 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한 원인이다.

상품수지가 흑자를 냈지만, 이것도 시장의 ‘해갈’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달러를 들여올 수출업체들이 선물환 거래로 미리 시장에 달러를 팔아 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언제까지, 어떤 규모로 지속될지도 미지수다. 지난달 사상 최대 흑자의 일등 공신은 수출보다는 최근 배럴당 40달러 선까지 떨어진 국제 유가였다. 수출입이 증가세를 유지하면서 얻은 ‘확장형 흑자’가 아니라 동시에 꺾이면서 나온 ‘축소형 흑자’라는 얘기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본부장은 “세계 경기가 동반 침체로 빠져들고 있는 만큼 수출에 크게 기대를 걸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통화 스와프를 통해 미국에서 들어오는 달러가 단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상수지 흑자와 맞물려 장기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란 분석이다. 외환은행 김두현 딜링룸 차장은 “월말을 맞아 자금 수요가 워낙 몰린 탓에 스와프 자금 인출 효과가 빛이 바랜 듯하다”면서 “하지만 시장 심리는 호전되고 있어 해외발 충격만 없다면 예전 같은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드시 밝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당초 ‘안전판’ 의 성격이라던 통화 스와프를 실제로 사용해야 할 만큼 최근 외화자금 시장의 여건이 악화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달러당 1500원 선을 넘나들면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이전 상태로 돌아가 있다.  

한은이 스와프 자금을 끌어 오기로 한 데는 더 이상 외환보유액을 풀기 어렵다는 사정도 있다. 10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2122억5000만 달러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달 들어 기획재정부가 61억 달러를 스와프 시장에 공급하는 등 67억 달러를 풀었다. 한은도 네 차례 스와프 시장에 총 75억 달러를 공급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2000억 달러 선을 지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2000억 달러 선이 시장에 주는 심리적 효과를 의식해 스와프 자금을 쓰기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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